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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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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과 회상 1999

동병상련

SHADHA 2025. 2. 21. 09:00

 

두 사람 다 슬프다.

두 사람 성 뒤에는 사장이라는 호칭이 있다.

두 사람 다 승용차가 없어졌다.

두 사람 다 강한 시장기를 느끼고 있다.

두 사람 다 지금 가진 돈이 없다.

두 사람 다 배가 많이 고프다.

두 사람 다 재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이다.

 

1.

P사장과 온천장에서 헤어질 때부터 예정에 없던 겨울 가랑비가 화려한 번화가 불빛들 사이로 내리기 시작했다.

나이트클럽 앞 좁은 분식집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씩 비우고 각자 다른 약속을 위해 헤어져 가는 길목이 외롭다.

우산도 없이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 가는데 얼굴에 와닿는 빗방울이 매섭기는 해도

뜨거운 가락국수 국물을 마신 탓으로 춥다고 느끼지 못해 다행스럽다.

 

지하철의 고가 역사.

처음 PC공법을 도입하여 부산 지하철 역사 건설에 적용 채택했을 때, 낯선 새로운 공법이었기에

기술 습득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밤 늦도록 디테일을 연구했고  건설되었을 때 자부심도 있었다.

 

지하철은 고가역사 부분을 지나 교대역부터 지하구간으로 진입하자 더 짙은 침묵과 적막감속을 달려간다.

16년 전인 1984년 처음 지하철 역사 설계를 시작하였을 때,

새로운 건축과의 접근이어서 어떤 두려움과 사명감으로  임했었다.

먼저 건설된 서울 지하철보다 더 나은 디자인과 재료를 선정하기 위해 고민을 하던 나날이었다.

그 지난 날들이 내가 설계에 참여한 역들과 역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오래된 추억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지하철 설계를 시작했던 16년의 세월처럼 그리 지나갔다.

IMF외환위기의 여파로 모든 것을 다 잃고 지하철 설계자로서 자부심과 작은 명예마저 다 날려버리고

빈털터린 채, 그의 지하철 공간을 지나고 있다.

 

덧없는 회상에서 깨어나 시선을 여니 객실 내 요란한 광고들이 눈을 끈다.

속내의 차림으로 서 있는 여자 모델의 아름다운 육체의 윤곽. 핸드폰 광고에 다리를 벌리고 선 여자 탤런트.

기발한 착상과 문안으로 미소짓게 하는 주병진의 내의 광고도 재미있다,

 

 

2

아주 오래된 모자를 눌러쓰고 팔짱을 낀 채  눈을 내려 감은 60대로 보이는 남자. 50대 일지도 모르지만

수심에 가득 찬 표정과 옷차림새가 그리 보이고 떨어져 앉아 있어도 그에게서 짙은 술냄새가 난다.

먼지 앉은 낡은 구두에서 지독한 가난함이 배여 난다.

.... 산다는 게 도대체 뭔데 왜 죽지도 못하는 걸까?

    가족? 아니면 삶에 대한 미련? 또 다른 행복이 있는 것일까?

.... 포기한다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그래도 살아야 되는 것인가 ?

.... 나는 왜?

그는 이따금씩 깊은 한숨을 내어 쉰다.

숨을 내어 쉴 때마다 퀴퀴한 술냄새가 나는 것 같다.

 

중간자리에 앉은 30대 중반의 사내 눈꼬리가 지하철 객실 바닥까지 처졌다. 

서러운 이야기라도 한마디 건네면 금세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

실직자, 실직자라고 이마에 써 놓았다. 하필이면 IMF외환 위기로 워낙 실직자가 많은 때여서인지.

아니면 많은 실직자를 만든 사람으로서 자격지심 때문인지,

카드 연체에다 핸드폰, 삐삐요금 연체로 통화정지 상태알 것이고, 연일 날아드는 최고장에 독촉장.

사정하다가 설득시키려고 하고 협박까지  하는 독촉 전화.

우유값도 없다고 아침부터 짜증을 내는 아내도 있을 것이고... 휴우

도대체 어디로 돌아다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출입구 쪽에 붙아 앉은 머리숱이 적은 40대 남자가 나를 보고 씩 웃어 보인다.

낡은 양복에다 낡은 군화 같은 구두. 고통의 때가 얼굴에 가득하여 아무리 웃으려 해도 아파 보인다.

집에 쌀이 얼마나 남았을까? 집주인의 월세 독촉은 얼마나 심하고 어쩌면 아내마저 없을지도 모르겠다.

집 골목 앞 구멍가게에서 라면 한 봉지와 소주 한 병 사들고 휑하니 빈 집으로 들어 설 지도...

하아...

그 사내는 줄곳 나를 쳐다본다. 그 슬픈 눈빛으로 나를 본다.

분명 나의 처지를 내가 그에게서 느끼듯, 그도 그리 느끼고 연민의 정으로 날 보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도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도 씩 웃음 지었다.

같은 느낌. 같은 동질감으로 세월의 눈치로 서로를 읽고 있다.

그래서 우린 동병상련으로 마주 앉아 미소 짓는다.

 

 

3.

본능적인 책임감 때문에 비 오는 차가운 겨울날 거리를 헤맨다.

어쩌면 그들도 그럴 것이다.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한 책임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본능적인 책임.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 버텨야 하는 이유.

그것은 실수한 한 인간의 가족에 대한 도리와 책임. 사랑이다.,

 

빈 땅속일 때부터 나의 머릿속과 손끝에서 만들어져서 존재되었던 서면역에서 롯데호텔까지 연결된

지하보도를 따라 걸어서 화려한 롯데호텔 라운지로 들어설 때,

오랜 습관과 익숙해진 동작으로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변신하고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사람을 만난다.

 

아!

현실의 급작스러운 변화와 이질감.

위선과 혼란과 아픔이 함께 배여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비 오는 차가운 겨울날 거리를 헤매는 우리는 동병상련의 마음일 것이다.

 

.....1999년<고백과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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