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미포가 보이는 풍경과 니콜키트만 본문
니콜 키트만
1.
콧구멍으로 바람이 든다.
아주 미미한
생명 바람이 든다.
오늘이었는지, 어제였는지,
영안실로 실려나간 사람의 냄새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병상에 눕혀진 채
산소 호흡기가 코에 꼽혔다.
깊은 수면에 빠졌다 잠시 눈을 뜨니
중환자실로 처음 들어설 때,
하얀 커튼을 사이에 둔 바로 옆 병상에서
심한 구갈증의 기침을 해대던 할머니가
가족들의 나지막한 울음소리와 함께
영안실로 옮겨지고,
간호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얀 새 시트를 깐다.
죽는 자와 사는 자가
어느 길로 가든
대기하며 기다리는 공간을
하얀 커튼으로 구획하여 공유하는데..
나는 살아남는 쪽에 속하는 것 같았다.
누가 그리 말하지는 않았지만
간호사들의 눈빛에서 그걸 알았다.
전혀 연민의 빛이 없었으니..
플라스틱 소변 통을 건네 줄 때
쌔액 웃는 간호사의 미소가
아직 나를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2.
또 하루가 지났다.
맞은편 병상에서 밤새 살려달라며 외치던
중년 남자가
잠깐 잠이든 사이
보다 큰 병원으로 이송 중에 죽었단다.
생존자로서 존재할 때에 마주쳤던 그 눈빛이
잊히질 않는데,..
그리고
또 잠이 들었다.
평생 이렇게 잠을 많이 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잠결에 어렴풋하게 들리는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과자 먹는 소리에 잠을 깬 새벽.
죽는 자는 죽고,
산 자는 그냥 산대로 산다.
..톰크루즈 부인 있잖아..
..아 ! 그래, 그래, 그 예쁜 여자, 이름이 기억 안 나네..
하얀 커튼으로 둘러쳐진 나의 공간 너머 형광등 불빛.
그 아래 당직 간호사들의 수다 떨기는 계속되고 있었는데,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자로서의 확인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커튼 너머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니콜 키트만 !
..!!!
..그래! 니콜 키트만이야..
커튼이 열리면서 상큼한 사과향 냄새와 함께
예쁘장한 간호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잠 깨셨네.. 저녁 내내 주무시더니..
살아있는 젊고 예쁜 여자의 냄새는 언제나 상큼하여 좋다.
그러나 살고 죽는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같다.
길고 긴 고통 속에 파멸이 끝이 나고 1999년 봄에 오랜 인연의 지인이 투자하여 해운대 마린시티
<썬프라자 오피스텔>에 작은 사무실을 다시 시작하고 4명의 직원들을 채용하고 재기의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가까운 병원 이사장의 병원 프로젝트의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며 매일매일 늦게까지 야근을 계속했다.
추석명절이 다가온 즈음에 몸에 이상한 증상들이 나타났고 호흡곤란 현상이 계속되었다.
처음엔 죽음보다 더 힘든 고통의 나날을 넘기고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면서 긴장감이 풀려서 아픈 줄 알았다.
버티다가 사업계획서를 완성하고 넘겨주고 나서 내가 설계 했던 해운대 성심병원으로 스스로 운전하여 찾아갔고
몇 가지 검사를 하고는 바로 중환자실로 넘겨졌다.
,,, 심부전증.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넘어왔는데 병원장의 배려로 남향의 독실로 배정받고 치료를 계속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면회 온 아내로부터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서 경매를 받은 사람에게서 이사 비용을
지원할 테니 최대한 빨리 아파트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험한 산들을 넘고 나니 또 다른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남쪽으로 난 창 밖으로 해운대 미포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보인다.
동해남부산 철로의 건널목이 있는 미포로 내려가는 길.
그 끝이 바다가, 푸른 바다가 은빛 윤슬로 빛나고 있어서 아름답다.
절망 속에서도 또 새로운 희망을 생각했다.
....1999년 10월에...shadha의 <고백과 회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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