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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서울>아직은 푸르기를 갈망하는 영혼 본문

한강 독백(서울)

<서울>아직은 푸르기를 갈망하는 영혼

SHADHA 2004. 1. 24. 21:46


韓國 旅行
2003






아직은 푸르기를 갈망하는 영혼

...여의도 공원 새벽 산책...







어떻게든 나 역시

물(物)을 만들어내는 길을 �아야겠소.

조형되고 씌어진 物이 아니라

솜씨 자체에서 우러나는 실제들을 말이요.

어떻게든 나 역시 가장 작은 구성 요소,

내 예술의 세포, 만질 수 있으면서도 비물질적이고

모든 것을 표현하는 수단을 발견해야겠소....


..1903년 8월 10일 살로메에게 니이체가...

< 그 영혼의 푸른 불꽃 중 >







1. 영등포 역

밤 12시 반에 영등포驛에 내렸다.

대합실 통로의 상점가에는 이미 셔터가 내려져 있고

기본적인 조명등만 켜져 있을 뿐이어서  실내가 어둡게 느껴졌다.

내려진 셔터앞에 노숙자들이 한사람 두사람 자리를 잡아가고,

몇몇은 아직 그저 역내를 서성거리고 있다.

넓고 긴 계단을 천천히 밟고 내려와 역 광장으로 다가 서려니

총알택시 호객꾼들 사이로 또 다른 여자 호객꾼들이

힐끔 힐끔 눈치를 살피며 다가 서려한다.

영등포역앞 거리는 밝은 불빛과 네온불빛으로 화려하게 살아 있었고

이제 그 밤의 절정으로 다가서려는 준비를 마치고 있는 것 같았다.

총총 걸음으로 택시 승강장으로 다가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건네고 목적지를 말해야 했다.

...여의도 mbc방송국앞으로 가 주세요..

그 시간이면 5분도 채 안걸리는 거리를 가기 위해

늦은 밤 한참동안이나 택시 승강장에 차를 세워두고 장거리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택시기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의도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자

갑자기 낯선 곳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횅하니 빈 넓은 도로와 높은 빌딩들의 어두운 침묵.

그 공허속으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낯설고 깊은 공허속으로...







2. 빌딩안으로..

건물 관리인의 눈에 잠이 붙었다.

의례적인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잠겨져 있는 메인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타자 더 깊은 침묵속에 갇혀가는 것 같았다.

새하얗게 질려있는 조명등과 싸구려 페인트로 칠해진

내부 철판 박스안에 갇힌 채로 하늘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땡-하는 파열음속에 문이 열리고 갇힘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역시 어두운 복도,

그 복도끝에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익숙해 지지 않은 곳의 까만 어둠은 언제나 공포감을 준다.

그래서 하얀빛은 언제나 희망이 된다.

오늘도 그 또 다른 희망을 찾아 이 검은 밤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3. 새벽회의

...부산 설계팀은 아무래도 서울에 비해 너무 약해..그건 인정해야지...

...하면 되지, 기본계획만 나오면 안될 것도 없잖아요..

...대구 정서는 매우 보수적이어서 타 지방에서 설계하여 들어가면 어려워..

...그래서 부산팀으로 가야 한다는거지...

...빨리 팀웍 구성을 끝내고, 캐드시스템 프로그램 구성도 서둘고,

  기본설계는 부산과 서울팀들이 컨소시움으로 진행하는걸로 하고,

  교통영향평가는 대구팀으로 하는게 나을 것 같아..

...그럼, 내일 땅 계약 들어갑니다....


밤은 점점 깊어가는데 회의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늦은 밤 커피만 마셔대다보니 심장에서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쿵쿵쿵...

심장박동소리와 진동이 혈관을 타고 손가락까지 와 닿는다.  

담배와 커피..

내게는 치명적이라는데...난 그것을 손에서 놓지를 못한다.

그래서 담배도 던힐에서 타르와 니코틴 함유량이 훨씬 적다는

Lake으로 바꾸긴 했는데 피울 때마다 가슴이 아픈 것은 똑같다.

몸에서 거부 반응을 보여도 난 계속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워댄다.

점점 쇄퇴하여가는 육체에다 죽음에 이르는 가속도를 붙이는 일에

나는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는 것같다...어쩔 수가 없다.







4. 새벽에 혼자 남아....

새벽 4시에야 회의가 끝났다.

여의도에서 갈 만한 호텔이나 여관이 별로 없다.

영등포쪽으로 나가면 질퍽한 느낌의 러브호텔이 많기는 하나

싫다...그 영역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 싫다.

어차피 아침까지는 몇시간 남지도 않았는데,

그냥 사무실에서 그 남은 밤을 버티기로 했다.

다들 돌아가고 혼자 남았다.

소파에 기대고 탁자위에 발을 뻗고 누워봤으나 잠이 오지를 않는다.

아마 연거퍼 마신 커피 탓일게다...

컴퓨터를 켜고 존경하는 분중 한 분께 편지를 썼다.

눈꺼플에 잠이 달라붙어 다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끝내 잠들 수가 없다.

길 건너 mbc 사옥엔 층별로 간간히 불빛들이 새어 나왔다.

아마 아침 첫 뉴스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아나운서는 눈을 부비며 차를 타고 달려 와 방송준비를 서둘 것이고..

스탭들은 대낮같이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패턴은 참 이상하고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낮에만 일하고,

어떤 사람들은 밤에만 일하고,

어떤 사람들은 밤낮으로 일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루종일 일하지 않고 산다.

재미있다.







5. 남은 시간에 대한 기다림

여의도 광장쪽으로 난 모 아파트 모델하우스의 벽면마다 장식된

김남주의 다양하고 섹시한 포즈들이 새삼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아름다운 여인이 혼자 지키는 여의도의 새벽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였다.

어디선가 낮은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창틀을 겸한 에어콘 박스 커버에 걸터 앉아

지금껏 살아 왔던 날들과 남아 있는 날들...

그리고 일할 수 있는 시간들과 사랑할 수 있는 시간들을 헤아려 보고

살아왔던 날들속에 기억되어 있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 올려 보았다.  

가로등 숫자를 하나 둘 세어가면서...

100평이 넘는 사무실의 이쪽 끝방에서 저쪽 끝방으로

낯선 밤거리 헤메돌 듯  돌고 돌면서

국회의사당의 퇴색된 초록빛 돔에 여명이 비쳐질 때까지를 기다렸다.







6. 새벽 목욕탕에서


아침 6시

건물 지하에 있는 사우나가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들어가서

뜨거운 온탕에다 몸을 밀어넣고 천정을 응시했다.

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옷을 벗었다.

다들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하나 둘씩 모여 드는 것 같았다.

목욕탕에서 만나는 남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눈을 마주치기를 피하면서 상대방의 아랫도리쪽부터 응시한다는데 있다.

야생동물들이 상대를 공격하기전 전력을 탐색하는 행위처럼....

여기서 위축되거나 기가 죽으면 목욕탕을 나설 때까지

주도권을 빼앗기는 느낌을 갖게된다.

그래서 나는 벗고 있을 때는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

더 위풍당당하려 애를 쓴다. 그래봤자이긴 하지만...







7. 이른 아침 여의도 공원 산책

중소기업 상설 전시장을 지나 여의도 대로를 건넜다.

어느땐가 작은 딸아이가 이른 아침에 TV 홈쇼핑 방송을 보다

잠자는 날 깨워 사달라고 졸라서 잠결에 사 준 소형 디지탈 카메라.

허리춤 뒷춤에 있는 듯 없는 듯 찰 수가 있어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출장길에 유용하게 쓰게 된..

디카를 손바닥 안에다 넣고...


뿌연 아침 안개가 조금이라도 먼 시야를 감추고 있어도

막 잠에서 깨어난 선명한 초록빛까지 감추게 할 수는 없었다.

광장이던 곳을 인공적으로 공원화시킨 녹색공간.

뉴욕 맨하탄에 센트럴 파크가 있다면

서울 여의도에 여의도 공원이있다.

바람직한 시도였다는 생각을 품으면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아예 자연적인 공원으로 가려면 더 자연스럽게 조성되어야 했고,

인공적으로 가려 했다면 더 섬세하고 진지하게 꾸며졌어야 하는게

맞는게 아니였는지 하는...

매점들과 부대시설들이 너무 엉성하고 낭만이 없게 느껴진다.

비교적 잘 조성된 연못과 잔디와 나무들의 배열에 비해..

그 산책로따라 끝에서 끝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책했다.

아침마다 조깅할 수있는 운동화와 가벼운 운동복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담고,

연못에 비쳐지는 여의도의 하늘을 보는 사이

아침 출근길을 서두르는 셀러리맨들의 움직임들이 많아지고 있어,

곧 삶이라고 불리우는 전쟁이 시작될 것을 감지하게 한다.

나도 이제 전쟁터로 들어 갈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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