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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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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샘

푸른샘62 자신보다 누구를 더 사랑할 수 있는지

SHADHA 2004. 2.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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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자신보다 누구를 더 사랑할 수 있는지

12/20








 
자신보다 누구를 더 사랑할 수 있는지?


오늘 月仙里라는 이름 예쁜 동네에 다녀왔습니다. 그 골짜기 어느 집에 사는 한 계집아이를 오랜만에 만나러 간 것입니다. 지난여름 방학의 끝 무렵에  우리 집에 와서 비슷한 또래의 조카들과 어울려 책도 읽고 쇼핑도 다니고 수영도 좀 배우다 돌아간 뒤로 한 석 달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은혜는 어제부터 갑자기 눈이 사시가 되고 오른 쪽이 잘 안 보인다고 해서 마침 오늘 병원에 나갈 참이었다는데, 나를 보더니 멀쩡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것입니다.


딸이 없는 나는 딸을 다루는 일에 몹시 서툽니다. 원래가 그런 것 같아요. 난 특별히 여자 아이의 머리를 빗기거나 옷을 골라 입히는데 캄캄합니다. 그래서 막내 여동생의 두 딸을 돌보는 일을 잠시 맡을 때도 머리는 모두 단발로 자를 것, 옷은 바지와 티만 가지고 오도록 주의를 주었었지요. 아무튼 지난여름 세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실컷 쏘다니며 놀았던 날들은 나를 다시 젊은 엄마로 되돌려 주는 듯 했습니다.      


십 삼 년을 모시던 시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실행하려던 일이 한참 느려지고, 또 삼 년 전 친정어머니 떠나신 허전한 자리를 곧 메꾸리라던 결심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내가 딸을 갖는 일은 어쩌면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은혜가 작년 겨울에 처음 우리 집에 머물 때에는 애들 아빠나 입시를 벗어난 두 오빠들이 어찌나 예뻐하든지 도리어 내가 심통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여름에는 내게는 이모라고 호칭하면서 애들 아빠에게는 착착 아빠라고 부르며 갖은 아양을 부리는데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알아온 지 두어 해 되는 이 아이는 사실 뇌성마비의 후유로 걸음이 부자유하고 지능도 썩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서는 가장 교육의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귀염성있는 용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아이와 눈길이 마주쳤을 때 나는 강하고 뜨거운 전류 같은 것이 흐르는 듯 했습니다. 사랑의 감전이라고 할까요? 그 후 내 안에 그 아이를 받기 위한 준비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처럼 때로는 머뭇거리고 때로는 멀어지면서 말입니다.


지난 번 우리 집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갈 때 아이는 가기 싫어하며 긴장 때문인지 속옷에 대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벗어서 몰래 세탁기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다른 빨래들과 섞여버리기 전에 발견했지만 난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맨 손으로 빨아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달랑 우리 가족 외의 누구 옷도 빨아본 적 없는 내가 지금 내 가족으로 들이려는 아이의 변 묻은 속옷을 견디지 못 하는 것입니다.


숙명으로 핏줄로 얽혀버린 자식이 아닌 누구를 키우고 있는 세상의 모든 여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던 날이었습니다. 전처의 자식을 키우는 일의 지난한 고통이 한꺼번에 이해되며, 날마다 며느리의 속옷 빨래며 도시락을 싸주시는 이웃 할머니가 너무나 대단한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내 아들인들 처음부터 사랑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첫애가 태어나자 온갖 축하와 찬사를 다 받으면서도 멀리 달아나고싶은 현실에 대한 우울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작은애는 아마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맞은 어버이날, 학교 앞 문구점에서 산 노란 형광빛 꽃무늬 손수건 한 장을 <어머니, 작은아들의 정성을 받아주세요.>라는 카드와 함께 주었을 때부터 사랑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생각되는 내 아들들에 대한 감정도 돌아다보니 냉정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던 내가, 한 지체부자유아를 사랑하려는 것은 가증스런 허영이다는 자조가 찌릅니다. 아이는 아들들보다 곱절의 손이 가야할 것입니다. 내 걸음은 알레그로에서 라르고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반노예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는 셈입니다. 아이는 내게 묻더군요.'아빠는 왜 안 와?' 나는 아이를 좀 오래 업어주고, 눈을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이는 묻더군요 '언제, 며칠?'


     '00.12.20  

     나르시시스트 푸른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