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백련사 연꽃들은 어디에...
12/18
백련사 연꽃들은 어디에...
주말의 조금 남은 햇살을 받으며 강진 쪽으로 향했습니다. 빠르게 한 행보한다면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잇는 산길을 산책할 수 있겠다싶었지요. 가벼운 두통과 마음 한켠에 자리한 먹먹한 둔통을 씻기 위한 나들이였습니다. 이제 점차 차가워지는 날씨가 바깥 원행은 힘들게 하리라 싶어서 햇볕이 조금만 부드러워도 가까운 곳으로 나가게 됩니다.
지난봄에 지나던 길을 달리며, 문득 만나는 것은 진달래 꺾으려 멈춰서 오르던 산길과 부드러운 새쑥을 뜯으려 내려가 본 개울둑입니다. 진달래 술을 맛보다 그 고운 빛깔로 즐기고, 어린 쑥은 바지락 넣은 토장국으로 끓여 참 맛나게 먹었던 기억도 함께 납니다. 그런데 이 짧은 기억력은 겨우 올 봄의 일밖에 남기지 못하고 그 전의 수많은 나들이를 다 까먹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미워하는 일도, 화내는 일도 멀어지고 오직 남는 것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나는 시간과 존재에 대한 탐심뿐이라는 걸 쓸쓸히 자각합니다.
그 언젠가 짙붉은 동백 한 가지 끊어주던 곳이 여긴지 아니면 선운사인지, 대흥사인지 아득합니다. 네시 넘어 도착한 백련사의 등산로는 겨울철 화재로부터 보호를 위해선지 차단되어버리고 울울한 동백림 속에 여기저기 흩어진 옛 스님들의 부도에 남은 이름만 읽다 돌아서 나왔습니다. 항상 들리는 선다원에서의 차 한잔으로 선뜻한 마음을 풀고, 앞마당의 벗은 목백일홍의 사진을 두어 장 찍어 두었습니다. 겨울 어둠은 준비된 검은 물감을 일순에 뿌리며 다가와 야맹의 겁쟁이는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지난봄의 감상글을 대신 올립니다.
<내 사는 곳에서 사오십 분 거리에 있는 萬德山 白蓮寺는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데, 절 이름은 우연히도 중국의 노산에 있는 白蓮寺와 같답니다. 무애에 뛰어난 중국 백련사 스님들이 도연명을 청했으나 술을 마실 수 없는 절은 가지 않는다고 거절했다는 그 백련사처럼 조선에서도 무애에 뛰어난 선사들의 구국과 기도 도량인 절로 꼽힙니다. 지금은 그 많았다던 연꽃 대신 절을 감싼 동백 숲의 청청한 잎과 붉은 꽃으로 방문객을 끌고 있지만, 백련사 이름 안에 담긴 그 연꽃들의 역사의 깊이와 향에 대해서는 흔적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백련사에 오는 이들이 대웅전은 외면해도 꼭 들리는 곳이 禪茶苑이라는 백련차 茶道 試演실입니다. 이곳 차는 일찍 차 문화의 선두이던 草衣 선사와 秋史 김정희 그리고 茶山 정약용 세 분이 차를 나누고 즐기며 유배의 한을 다스리고 문필을 겨루던 촉매제였습니다. 임금께 진상하던 그 자연산의 질 좋은 차까지도 마실 수 있는 곳입니다. 곡우 전에 채취한 雨前茶가 가장 높은 것이고 다음이 참새의 혀 같다는 雀舌茶인데, 지금은 곡우 전이라 작년산 우전차는 이제 없고 작설차로 대신 하였습니다. (이 차를 몇 잔 째든지 재탕으로 마시면 드디어 비만했던 내장이 그 불결과 느끼함을 확 벗는 느낌이 듭니다)
선다원의 전면으로 난 장짓문 형태의 유리문 바깥 풍광은 차 맛을 몇 배 올려주는 한국 최고의 절경이라고 수없이 소개된 바 있습니다. 바로 앞마당에 있는 삼 백 오십 년 된 목백일홍의 줄기는 피막을 벗어버린 완전한 살색과 해묵은 굴곡으로 봄의 소리와 연두를 외면한 듯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완벽하게 섬세한 가지들은 하늘을 파고들며 직접 봄의 모든 성분들을 授乳받고 있는 듯합니다. 그 팔 사이로 거침없이 펼쳐진 강진만 구강포와 섬, 섬들의 흐릿한 눈길을 맞받으며 입안에 가득히 고이는 茶香을 차마 삼킬 수 없어 깊은숨만 쉬게 됩니다.
백련사 곁으로 난 산책길은 화전 놀이에 필요했던 진달래가 소나무아래 빼곡합니다. 마른 가지에 조화처럼 달린 꽃잎이 그늘에 추운 듯 해쓱한 얼굴로 떨고 있습니다. 일 킬로미터 거리를 '바위고개'언덕을 혼자 넘자니...' 마지막까지 부르면 다산이 '목민심서'를 쓰던 다산초당과 멀리 구강포와 흑산도를 바라보던 정자, 연못과 차 끓이던 바위, 그리고 찻물을 받던 샘돌 丁石을 직접 새겨둔 곳에 도착합니다.
다산초당은 강진의 윤씨 일가 소유의 산정에 자리하여 그가 유배 18년 동안을 이곳 후학을 가르치며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곳입니다. 정자에 서서 멀리 바라보이는 앞 바다는 날 맑은 날은 흑산도까지 보이는데, 그곳에 유배된 형 정약전도 그곳에서 죽기까지 물고기 도감이라 할 수 있는 '자산어보' 등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망망한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을 바라보며 앞서 간 이들의 남긴 발자취를 더듬고 나면 그만큼의 시간과 공간이 마음속에 들어와 앉습니다. 죽음은 무엇이며 삶은 또 어느 경계 안에 있나요? 그 모두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기다리는 자세를 배움이 생의 여정 아닐까요? 자연은 그런 길의 동무같아서 문득 사무치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초의가 지었다 혹은 편(編)했다는 동다송의 끝 부분 - 흰 구름과 밝은 달 아래서 혼자 차 따라 마시는 즐거움을 읊은 선미(仙味)의 노래로 못다 한 여운을 대신합니다.
밝은 달은 촛불이며 나의 벗이네 흰 구름 자리 펴고 병풍도 되네 젓대 소리 솔바람 소리 소량(蕭凉)도해라 청한(淸寒)함은 뼈에 저리고 심간(心肝)을 깨워 주네 흰 구름 밝은 달 두 손님 모시고 나 홀로 차 딸아 마시니 이것이 승(勝)이로구나.
'00.4.9 --'00.12.18 푸른샘 옮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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