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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29 Surprise July!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29 Surprise July!

SHADHA 2004. 2. 1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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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7/7 Surprise July!

07/14







 


7/7


가도 가도 푸른 녹색의 들판과 아름다운 능선위로 얼음 보송이를 얹은 듯한 아름다운 수목. 가늘게 휜 길의 곡선사이 나지막한 동산 위의 나무들이 장마를 잠시 비껴난 햇살과 바람의 유희 속에 싱싱하다. 아직도 분홍 접시꽃과 메꽃의 잔영이 스치는 길가엔 흰색, 보라색의 도라지꽃과 관목에 의지한 이른 능소화가 활짝 피어있다. 초록의 거품을 둘러쓴 산과 연두의 바다처럼 펼쳐진 끝없는 들판을 달리는 기차의 넓은 창은 다시 한 번 푸른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교과서처럼 펼쳐져 있다.


녹슬지 않은 추억을 따라 푸른 청춘의 흔적을 찾아 달리는 길에 인디언 썸머의 노을이 깔리자 잊었던 그리움이 낮고 감미로운 첼로의 음악처럼 가슴 바닥을 적신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무릎 위에 얹고 있기만 해도 한없이 따스하고 포근한데 한 사람을 심장에 접목하고 사는 시간이야 얼마나 큰 위안이고 행복인가. 한 존재를 자라게 하고 지키고 돌보는 일은 지난한 수고와 배려와 희생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후에 남은 그리움의 향기 또한 음악의 끝처럼 여운을 남긴다.


장마답게 저녁이 되도록 종일 비는 그치지 않는다. 다도와 전통 예절을 공부하고 예술 철학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고집스런 한선생네 집, 와려실에 도착하고 보니 도예가이자 미술관 전시 기획을 하는 손선생과 청라는 벌써 와서 녹차잎을 섞어 만든 손 수제비로 저녁 대접을 받고 있다. 모시조개로 맛을 낸 국물에 재콩나물과 외호박을 썰어 넣은 수제비 국물은 비 오는 날의 축축한 정서에 딱 맞는 음식이다. 풋고추로 알큰한 맛을 더한 수제비를 먹으며 서로 통인사를 나누고 다실로 들어가니 서가에 빽빽이 꽂힌 책들이 주인의 품위를 말해준다.


차와 예절에 관한 수많은 책들 중에서 손선생은 전통 복식과 음식에 관한 책을 집어들고 나 역시 <다완>이라는 태학사 간의 책을 뽑아 들었다. 한선생은 구름떡을 만들랴, 손들이 사온 과일을 씻어서 내오랴, 저녁 먹은 설거지를 치우랴 부산하다. 먼저 난로 위에 올려진 물 주전자가 말갛고 투명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요즘 궁중 음식을 배우는 손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들여온 구름떡을 보니 청자에 그려지는 雲문처럼 곡선이 겹쳐진 것이 한국식 파이라고나 할까.


구름떡을 만드는 법은 잣, 호두, 밤, 대추를 다져서 찹쌀가루와 섞어 배 보자기 위에서 증기로 찐 것 후, 납작하게 손바닥으로 눌러서, 거피하고 삶은 팥소를 볶아 채에 내린 것에 무친다. 그런 것을 여러 장 겹쳐 눌러서 랩에 싼 후 살짝 얼린 것을 비스듬히 단면으로 썰어서 내면 하얀 떡 사이로 팥고물이 가늘게 그려진 구름무늬가 켜켜이 드러나는 것이다. 모양도 모양이려니와 맛과 영양도 일품인 요리를 먹으며 집에서부터 가져간 우전 감로차를 첫차로 마시기로 했다.


주인은 처음 개봉한 우전차잎의 모양과 향을 감상하도록 대통을 이용해만든 차수저로 떠서 객들에게 돌린다. 어린아이 손톱만큼 자잘한 잎의 말림 품새와 여린 향을 맡으며 차맛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첫탕은 끓인 물을 찻잔과 다관에 부어 헹구고도 오래 기다려서 식힌 낮은 온도의 물을 사용한다. 연두의 새순이 갓 피어날 때의 향긋함 그대로 전해지도록 최대한 조심스레 간을 보며 차를 내는 것이다. 백자 찻잔에 떨어지는 연한 노랑과 연두색의 오묘한 혼합, 그러나 차 맛은 기대만큼 매혹적이지는 않았다. 너무나 어린 순을 다루어서 아직 깊고 농염한 맛이 들지 못한 것일까?


세 巡杯를 돌자 주인은 매화꽃 한 송이씩을 찻잔에 던져 넣고 차를 다룬다. 따스한 물의 온도에 순식간에 활짝 다섯 잎을 펴는 것도 있고 옹송거리며 가장자리를 떠도는 것도 있다. 주인의 배려로 다시 매화꽃 한 송이가 나누는 향을 곁들여 몇 번이고 지치지 않고 우려 마신다. 드디어 차잎을 모두 꺼낸 후 빈 다관에 물을 부어 울궈낸 白沸茶를 대접한다. 오래 사용한 다관의 숨구멍마다에 숨겨졌다가 토해져 나온 차맛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순결하고 은은한 맛을 낸다. 그것은 마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이루는 본태성의 체취와도 같았다.


차를 알고 만드는 스님이 제조한 귀한 연잎차를 꺼낸다. 연잎을 양념장을 만들 때의 조선파를 다지듯이 가늘게 채 썰어서 자잘이 다진 것을 곱게 말리다가 찌기를 되풀이 한 것이라 한다. 너무 진하게 마시면 취기와 혼미를 불러오므로 연하고 가볍게 만든다. 첫 잔은 선녀의 옷깃에서 흘러나온 듯한 청순한 향이 살짝 달아나며 다음 잔을 유혹한다. 다시 되풀이 될수록 매력적인 향이 칼칼하게 목젖을 찌르며 천상의 세계를 헤매는 듯한 현기증을 준다. 스님들이 마실 때도 그 취기 때문에 조심스레 다루는 것이 연잎의 생잎을 쭉쭉 찢어서 만든 연잎차라 한다.


마무리는 다시 말차로 한다. 여전히 내게는 차의 고향처럼 포근한 말차의 맛. 일본산의 짙푸른 말차 가루를 작은 대수저로 오래되어 실금이 간 다완에 덜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거품을 일군다. 하얀 구름이 두텁게 덮이고 별처럼 자잘한 기포가 돋아난다. 손등에 손바닥을 서로 스치며 받아 마시는 말차는 특별한 인연이 오고가는 합환주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마지막 거품을 다시 헹구어 마시는 순간은 추억까지도 온전히 함께 마신 듯 맑고 투명한 淸香 속에 짜릿한 여운을 흘린다. '한 잔 더'마시기를 권하는 주인에게 두 번째를 사양한다. 진실로 사랑은 단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다. 단 한번의 사랑이 충일할 때는 더 이상의 가능성을 거부한다.


빗소리가 사위를 두드린다. 젖어버린 온몸도 빗소리에 흠씬 난타 당하는 듯하다. 달빛처럼 은은한 외등이 창가에 걸린 풍경과 물고기 그림자를 紗窓에 드리운다. 차를 마심으로 오는 취기처럼 도도한 흥취가 사람을 둥둥 띄운다. 애첩을 사랑하는 것이 어찌 한갓 애욕으로 뿐이랴. 茶童처럼 조신하고 참한 자태로 차를 내는 여인의 맑은 눈빛을 보니 모름지기 선비에게는 학문과 덕식의 고매함을 돋궈줄 총명한 애첩이 있어 함께 기예를 즐기거나 가무를 나눌 때가 아니겠느냐는 호방한 생각이 들었다. 유교의 도리와 본처의 추상같은 시기를 피해서라도 굳이 택할 여인은 방술에 능한 첩이 아니라 마음에 꽃길을 열어 道樂을 함께 할 여인 아닐까.


그러나 속절없이 한 남자의 腋窩에 들어가기보다는 홀로움의 자유와 성취를 향하는 여인들에게서 무한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가방을 들어주고 우산을 받쳐서 찻길까지 배웅해주는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한쪽 어깨를 적시고 가슴을 젖게하고 드디어는 은은한 차향처럼 뇌리를 휘감는다. 커피를 손쉽게 찾는 일상 사이로 어느덧 차는 고아한 첩처럼 내 마음을 당긴다. 그러니 차를 마신 후의 맑은 입술로 어찌 욕정을 탐하겠는가. 발을 씻느라 벗어두고 잊은 양말을 혹 정표처럼 남겨둔다 한들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실로 신선이 되어 구름 위를 걷는 듯 맨발로 돌아오는 길이 사뿐하기만 하다.


돌아오는 기찻길, 얼마 안 되는 시간 차이로 대지의 초록은 더욱 짙어지고 여유롭게 운무를 피워 올린다. 기찻길 가에 핀 하얀 무궁화와 노란 달맞이꽃, 키 큰 옥수수 밭 아래로 땀땀이 모종해둔 촉촉한 황토밭이 예쁘다. 대전 지나서 갑천을 건너자 장마비로 불은 물이 도랑을 이루고 거칠게 흐른다. 마르지 않은 수채화 그림 속으로 달리는 촉촉한 기분이 서울의 후덥지근한 트래픽 잼을 벗어난 홀가분함으로 더욱 상쾌하다. 들판 저 끝에는 키 큰 미루나무가 도열해있고 어느 산기슭을 지날 때는 한 무더기 소나무의 풍광이 수백 년 된 그림 속처럼 欣然하다.


푸른 이개 아늑한 들판을 지나는데 하늘은 문득 수평으로 낮게 터져서 오팔의 광휘처럼 황홀한 노을 빛을 마구 쏟아낸다. 남으로 달릴수록 더욱 붉고 밝아지는 노을을 본다. 정읍역 닿자 완전히 어두워진다. 정읍사의 여인처럼 높이곰 돋을 달을 바라지는 못하고 흑요석같은  깊은 어둠 속을 응시한다. 건널목의 깜박거리는 경고등만이 산 자들이 내는 영혼의 불꽃처럼 붉고 형형하다. 농가의 외등들도 하나 둘 별처럼 떠오른다. 집 가까이 다가가는 밤이다.



푸른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