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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31 숲으로 가는 길, 책으로 가는 길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31 숲으로 가는 길, 책으로 가는 길

SHADHA 2004. 2. 1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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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7/20 숲으로 가는 길, 책으로 가는 길.

07/22








숲으로 가는 길, 책으로 가는 길.



숙면 후에 일어나니 휴일 아침은 상큼한 대기로 서늘하기도 하다. 함께 수영장으로 향한다. 가긴 하지만 어제 운동을 하고 씻기도 했고 머리카락이 염소 살균제를 탄 물에 탈색되는 것이 싫어서 수영을 사양한다. 외곽의 시립 수영장 주차장은 넓은 숲을 띠 두르고 있어서 그저 책이나 읽을 요량으로 두 권의 책을 챙겨 가지고 갔었다. 너른 주차장에서도 숲을 향한 길목에다 정차해두고 네 날개를 펼치듯 문을 모두 열고 트렁크까지도 젖혀서 통풍과 청소를 한다. 의자를 젖히고 편하게 신발도 벗고 누우니 아침의 깨끗한 대기가 차 속을 훑고 지나며 습기를 말린다.


가지고 간 책 중 하나는 철학서이고 다른 하나는 여름 방학이면 쉽게 읽히는 스릴러물이다. 아무래도 먼저 손이 가는 <뉴욕 블루스 2>라는 통속 소설을 먼저 집어든다. 아마 바캉스 갈 때 배낭에 꼭 들어가는 소설이 이런 류 아닐까? 호텔의 풀 사이드에서 썬그라스를 끼고 썬탠을 하며 읽기에 딱인 소설이다. 여행지의 호텔 로비에서도 책을 빌릴 수 있다는데 주로 들키지 않고 바람피우는 남녀의 스토리나 발각되지 않는 살인극의 추리소설 류가 주종이라고 들었다.


소설은 미국 내에서 사는 한인들의 짓밟힌 삶과 한국 음악을 서양음악에 접목하려는 그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을 交織한 내용이다. 그러나 적절히 통속적인 것이 1,2권 모두 10페이지 이내에 폭력과 극렬한 섹스 씬을 올려놓아서 호기심과 함께 계속 기대하고 읽도록 입맛을 땅겨놓는다. ㅎㅎ 아무튼 숲에서 부는 바람을 즐기며 적당히 몰두하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소설이니까 비치 사이드 읽을거리 정도는 된다.


내가 여름이면 도서관에서 몽땅 빌어다 놓는 책은 로빈 쿡의 메디칼 스릴러나 시드니 셀던의 로맨틱 스릴러물이다. 이번 여름엔 로빈의 신간 Seizure를 한권 읽고 시간이 나면 중국 고전을 집중 공략할까 한다. 대학 때도 여름이면 시립도서관에 도시락을 싸들고 올라서 헷세나 톨스토이를 정복하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독서는 지적 만족이었고 또한 육체적 고통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다. 근시를 지나서 원시로 가는 시력은 어두운 곳이나 밤엔 책을 볼 수가 없게 한다. 눈알을 콕콕 쑤시는 통증을 비비며 견디는 데도 한계가 있다.


야외로 나가면서 책을 가지고 나가는 버릇은 전에는 운전하는 시간 동안 곁에서 무료히 견디는 것이 아까워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멀리 나가지 않아도 나무 그늘에서 자연광 아래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좋다. 비 그친 숲에선 엷은 물 냄새와 함께 싱싱한 풀벌레 울음소리가 쏟아진다. 일정한 주파수를 가지고 온몸을 진동하는 벌레들의 미세한 파장은 가끔 머릿속을 가렵게 한다. 이른 매미 울음 그리고 두꺼비 소리, 먼 물가에서 날아온 꾀꼬리 울음소리가 섞여서 아름다운 면 레이스같은 멜로디를 공중에 뿌린다.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는 아스팔트 베이비로 자란 나에게 최초의 숲 속 생활을 했던 기억을 불러온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해 여름 아버지는 산기도를 드린다며 큰딸인 나만을 데리고 무등산에 오르셨다. 산중턱의 간이 쉼터같은 양철집에 머물며 일 주일 가량의 금식기도를 하려 가신 것이다. 소나기가 내리면 양철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가히 음악이었다. 소나무 휜 가지에 칡넝쿨로 묶어준 그네를 타고 앞산이 다가왔다 멀어지는 것을 현기증나게 보다가 문득 발아래 또아리 틀고 있는 뱀을 집을 뻔한 것은 한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금식이지만 식사 때는 딸을 위해 수박이나 산딸기, 참외 등의 과일을 구해주셨고 준비해간 미숫가루를 진하게 타주셨다. 양철 집 처마 아래 도열한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인 모습, 과꽃과 채송화가 층층히 핀 산 속의 집이 지금도 뇌리에 또렷하다. 그 집에서 말벌에 손바닥을 쏘이기도 했지. 아버지는 식물 채집 숙제를 도와주셨다. 신문지 갈피에 처음 보는 며느리 배꼽이니 하는 풀들의 잎과 줄기와 뿌리를 좌악 펴서 말리는 일, 압화가 되도록 대자리 밑에 깔아주셨다. 아마 아버지는 그 때부터 딸의 전공으로 생물학을 생각하셨을까... 원서를 쓸 때 제법 여러 가지 근거를 대며 권하시던 모습은 뜻밖이었다.


그 때 느꼈던 원시의 숲 기운이 엷은 안개처럼 다가온다. 당시 무슨 제목의 기도를 그리 간절히 드리셨는지 모르지만 일주일쯤의 금식은 넉넉히 하시는 의지가 굳은 분이셨다. 아버지는 물가로는 보성의 율포 해수욕장에 잘 가셨지만 그곳의 익사사고 소식을 많이 접한 후로는 담양의 쌍교나 산동교 아래 민물에 세 딸을 데리고 천엽을 하시곤 했다. 군용 고무 보트를 불어서 우리들의 물놀이를 지키시며 맨손으로 가물치를 잡기도 하셨던 아버지, 지금은 그 부근 봉산에 터를 사두셨던 산소에 쉬고 계신다.


자연 속에서 생각을 굴리는 것이나 책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나 내겐 일반이다. 散策路를 바라보며 동시에 讀書路를 걷는 일은 상승의 효과를 얻게 한다.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숲이 내는 향기에 취해서 먼 추억의 길을 오가며 상상 속의 미래의 거리를 눈으로 읽는다. 자연과 책과 과거가 이루는 한 뭉텅이의 영적인 느낌이 수영장 물 속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것만큼 나를 해체한다. 세상의 공격과 위험에 대한 단속으로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 질긴 육체와 영혼에 가벼운 스트레칭 체조를 시키며 미래로 향하는 힘찬 생명력을 다지는 해맑은 아침이다.



2003.7.22

푸른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