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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27 나무 빨래판을 산 날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27 나무 빨래판을 산 날

SHADHA 2004. 2. 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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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6/24 나무 빨래판을 산 날.

06/25







 

여름에 들어서면서 옷가지를 모아서 세탁기에 빠는 일보다는 나오는 대로 주물러 널고싶은 일이 많아졌다. 얇고 흰옷들은 짙은 색의 거친 옷들과 함께 세탁기의 드럼통 속에서 도는 일이 고역일 것이다. 항상 그리 생각하면서도 바쁜 대로 몰아넣고 돌려서 우리 집 속옷들은 별로 깨끗하지가 않다. 사람도 近墨者黑이라잖던가. 심성이 여리고 순한 사람이 한 터프하고 더불어 사는 일은 참 어렵다. 그러면서 요즘 흰옷은 따로 애벌 불려서 삶아내지만 다용도실의 타일 위에선 아무래도 빨래가 되지 않는다. 삶은 것의 노란 물을 뽑아낼 방망이질도 쾅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착 주물러 비벼댈 수 있는 빨래판을 하나 사기로 마음먹은 지가 오래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아침나절이면 물건을 차에 싣고 다니는 남원 제기와 제상 장수가 온다. '주민 여러분! 지금 마을 앞에는 남원에서 만든... '으로 시작되는 태입을 틀고 다니는 장수를 가끔 출근길에 마주치기도 하는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아저씨, 빨래판 있어요?'하고 물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좀 기다려 그를 만나리라 하고 있는데 드디어 그 녹음된 목소리가 동네를 휘젓고 있다. 잽싸게 돈과 열쇠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차는 저만큼 모퉁이를 돌고 있다.


뒤따라서 쫓아가는데 거진 한 블록을 다 돌도록 차는 같은 속도로 내 걸음을 앞서고 있다. 소리질러 부를 수도 없어서 힘이 빠질 즈음 그는 서행하더니 공터 앞에 멈추었다. '아저씨. 그렇게 빨리 가면 누가 와서 산데요. 빨래판 있어요?' '오메, 아짐 그것은 칼 갈이 장수들이 갖고 다니제. 나는 제기하고 상밖에 없는디.' 살펴보니 돗자리에 발까지 골고루 있는데 나무로 만든 빨래판이나 방망이는 없는 것 같다. '아짐 철물점 같은디 가보쇼' 그래 나도 생각나는 곳이 있다. 동네 앞에 플라스틱 용기같은 기물을 파는 가게가 있었지.


찾아가 보니 이십 여 년을 한 자리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 얼굴이라 낮이 익다. 매실 철엔 큰 유리병을 사기도 했고 겨울엔 석유통을 사기도 했었지. 아니 생수를 찾아 어디까지 차를 몰고 다닐 때는 생수통 깨나 사던 가게이다. 그녀는 앉아있던 시멘트 구들 아래서 빨래판을 꺼내 준다. 맑은 랩에 싸여있는 것이 신품임을 증명하지만 아무도 오래 찾지 안아서인지 얼룩 물이 묻어있다. 그래도 비닐을 벗겨내니 금새 상큼한 나무 냄새를 풍기는 것이 오래 묵은 기억의 갈피를 열어젖힌다.


나의 빨래판에 대한 첫 기억은 대여섯 살 적 이발소에서이다. 아버지를 따라서 단발머리를 다듬으러 가는 곳은 남자 어른들이 다니는 이발소였다. 어른이 앉는 이발소 의자의 팔걸이에 빨래판을 걸쳐놓고 그 위에 높이 걸터앉으면 보자기를 두르고 가위로 머리를 깎는다. 앞머리는 미아 페로우처럼 말머리로 자르고 뒤통수는 오래 깍지 않아도 되라고 이층단발을 한다. 바리깡으로 높이 치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계 사이에 머리카락이 끼어서 잡아뜯기는 아픔 때문에 찔끔찔끔 울게되는 때이다. 그리고 마지막 손질은 얇은 회칼같은 삭도를 한 끝은 탁자 모서리에 못으로 박힌 가죽 혁대에 쓱쓱 문질러서 목덜미 잔머리를 면도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땀이 푹 젖어서 이발소를 나오면 아버지는 건너편 마르보시 앞의 우무 장수한테 우무 한 덩어리를 사신다. 노상에서 채 썰어 콩가루물에 타주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꼭 그걸 들고 집으로 와서 어머니에게 얼음이랑 사다가 시원하게 타라고 시키신다. 일년이면 두어 번의 이발 행사가 그렇게 빨래판으로 시작되었었다. 새 빨래판을 들여다보니 그 때보다 폭도 좁고 골이 더 촘촘하게 파인 것 같다. 매어 달 수 있는 구명도 뚫려있다. 하기야 무엇이나 자라서 생각해보면 그 때는 모든 것이 왜 그리 커 보였던가, 길은 또 그리 멀고 넓었던가. 책 보따리처럼 빨래판을 옆구리에 끼고 시장통을 벗어난다.


'오래 써요, 한 이십 년은 쓸 것이요.' 하는 가게 아주머니의 말을 생각하니 내 생애에 이번 빨래판은 아마 마지막으로 사는 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 친정에서야 거의 빨래를 한 적이 드물고 객지 생활 중에는 그저 공용의 것을 썼을 뿐이다. 결혼 후 어머니가 쓰시던 것이 오래 닳고 가운데가 뽀개져서 버리고 그 후로는 그저 세탁기에 돌리는 생활이었으니... 지금 쓰는 빨래 방망이도 어머니가 쓰시던 것이니 너무나 오래되었다. 십 여년 전 여행지에서 기념으로 사온 새 박달나무 방망이는 아직도 비닐에 싸여 얹혀있다. 다섯 자루나 사서 딸들과 나에게 하나씩 주신 무겁고 날이 센 남원 칼도 촌닭을 두들겨서 뼈를 자르거나 할 일이 별로 없어 싱크대 아래서 녹슬고 있으니...


지금 어머니가 남겨놓으신 것들은 거의가 다 자연산 재질의 생활용품들이다. 커다란 소쿠리는 지금도 아쉽게 쓰는 것인데 가장자리를 튼튼한 천으로 감아서 실로 꿰매놓으신 것이고 대, 중, 소 채반에 고운 채, 거친 채, 시루와 확독, 큰 찜통과 들통, 주전자와 한말들이 장독과 단지들이다. 무거워서 미처 가져오지 못한 다듬잇돌이 시골집에 있는데 임차인들의 신발 벗는 토방거리가 되어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제기는 제사상을 차리지 않을 며느리를 잘 아시는 까닭에 큰집에 잘 닦아서 보내셨다. 지금 이 방의 농 위에도 큰 잔칫상 두벌과 빨래 다듬는 홍두깨, 그리고 농 안에는 남겨두신 세모시 몇 필이 손자며느리를 위해서 고이 잠자고 있다. 다시는 더 구할 수 없는 유품이다.


돌아와서 깨름찍한 얼룩을 지우고 다용도실 샘가에 비스듬히 세워두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맨 처음 빨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자 빨래판 위에서 빨려질 빨래들의 순서를 생각한다. 아마 당분간은 우리 내외의 속옷과 와이셔츠 깃이 차지하겠지, 그리고 아들들이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의 속옷이나 기저귀, 그리고... 나는 더 이상의 미래를 추리해 낼 수가 없다. 가족이라야 달랑 네 식구에 더 보태어 두 식구가 다시 더 보태어서 서너 식구가 아마 최대한의 숫자가 되고 내 생의 끝은 올 것이다. 이십 년이라... 아마도 빨래판은 그보다 오래 견딜지 모르지만 내 시간의 장단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닯아지고 뽀개져서 버림을 받을 때까지 저 빨래판이 유용한 물건이 되고, 그 위의 빨래들이 행복한 단장이 되고 그 흰옷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오점 없고 건강한 삶이 되기를 빌어본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2003년 6월 24일, 우리 집에 들여온 빨래판의 운명과 이십 여 년 후의 나를 생각하는데 하지를 갓지난 여름날의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200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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