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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33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33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SHADHA 2004. 2. 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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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08/02









피가 가장 자리에 묻은 유리 파편은
새벽 공기에 물들어 투명에 가깝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나는 일어나서 나의 아파트를 향해 걸어가면서,
이 유리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저 완만한 흰 곡선을 비쳐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 비친 그 우아한 곡선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늘 끝이 밝아 오면서 탁해지고,
유리 파편은 곧 흐려졌다.
새소리가 들리자
이제 유리에는 아무 것도 비치고 있지 않다.
아파트 앞의 포플러나무 아래에,
어제 내가 버린 파인애플이 뒹굴고 있다.
젖어 있는 잘린 부분에서는
아직도 냄새가 풍기고 있다.
나는 지면에 엎드려 새를 기다렸다.
새가 날아와서 따뜻한 빛이
이곳까지 와 닿으면 길게 뻗은 나의 그림자가
그 회색 빛 새와 파인애플을 감쌀 것이리라.

<무라카미 류.....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中>


******

여행 준비... 여행할 곳을 선택하고 비행기 티켓과 숙소가 예약되면 가장 먼저 챙겨야할 것은 어쩌면 마음의 다짐인 듯하다. 낯선 곳에서 겪을 모험과 도전의 두려움을 안고 새로운 것에 대한 탐색과 성찰이 가져다주는 감동을 吸收紙처럼 빨아들일 수 있도록 영혼과 정신의 유연성을 다지는 것 말이다.


그 위에 무엇보다 건강을 체크한다. 며칠 날을 잡아서 단백질도 보충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둔다. 오래 외지를 떠돌며 견디어야할 튼튼한 다리, 게다가 지치지 않는 다양한 호기심을 지키기 위해선, 미각도 시각도 후각도 어떤 류의 감각과 정서에도 공감할 수 있도록 건강하고싶다.


한편 혼자 떠나던 출장길이나, 학회나 연수로 가는 공동여행이 아닌 가족여행은 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함께 지내면서도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서로의 숨은 능력과 행태를 발견하기도하고 새로운 모습에 감동하기도 할 것이다. 그건 내면의 보석 상자를 다시 발견하는 일일 것 같다. 우리 부부에겐 두 해 전 말레이시아에 갔던 것,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로 단 둘이 가는 해외여행이다.


행선지가 일본이라니 先驗자들은 다들 배고플까 봐 걱정한다. 너무 비싼 물가에 기죽어서 나 역시 걱정이 된다. 호텔에서 조식은 해결되지만 혹 야참이 그리울 땐 먹을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마트에서 햇반과 김, 일회량 커피 그리고 컵라면을 샀다. 쇠고기와 마늘을 넣은 고추장을 볶고 물외 짱아지, 무 짱아지를 잘게 썰어 무쳤다. 2001년산 김장 김치를 꺼내서 설탕과 참기름에 무쳤다.


시원한 속옷과 잘 마를 겉옷, 발 편한 신발과 세면 도구, 카메라와 신분증 여권 가방, 상비약으로 소화제와 매실환, 피부약, 해열제, 그리고 화장품이 들어가면 된다. 참, 생각난 김에 그동안 서랍에 모아둔 일본 동전을 찾으니 필름 통 가득, 꽤나 되네... 그러나 막상 여행 경비를 엔화로 환전하고 보니 돈의 부피가 허망하게 적다.


그렇다고 금새 훌쩍 떠나면 되는 일이 아니다. 핸드폰을 로밍 콜로 바꾸고 집안 단속과 빈 시간동안의 일들의 단속이 수월치 않다. 관리실에 신문은 갖다 보라고 이르고, 부재중의 회의는 대신 참석시키고, 베란다 화분에 물 줄 일도 부탁해둔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신발을 세탁하고... 빌려온 여행책자를 숙독하며 일정을 짜고 갈 곳을 이리저리 결정한다.


그러나 결국은 많은 욕심을 버리고 휴가의 본뜻에 맞게 지내기로 한다. 과로하지 않고 느슨하게 푹 쉬면서 가벼운 산책과 목욕 그리고 쇼핑에 목적을 둔다. 그래서 그들과 한 발짝 떨어져서 서서히 즐기기로 한다. 어쩌면 당황하게 할 일본의 문화, 그 차이와 동질감에서 애증을 느끼기도 하겠지. 부모님 세대가 갖고 계시던 습성과 가치관의 흔적을 만나기도 하겠지. 그러나 이번 일본행은 오래 미루었던 만큼 미움은 빼고 이해는 더하는 계기로 삼고싶다.


Shadha님 칼럼의 2002년 1월부터 5월가지 이어진 일본 여행기를 찾아서 찬찬히 읽으며 당시는 미처 공감하지 못했던 많은 감성들이 새록새록 다가왔다. 다 옮기지는 못하지만 처음 무라카미 류의 글을 인용한 부분과 20년 전 처음 가보는 일본에 대한 첫 감정, 그리고 여행에 대한 <꿈꾸는 바람>으로서의 아름다운 감상문을 여기 옮기며 일독한다.


*****

1983년 11월. 첫 번째 비행.

처음 비행기를 탄다.
제주도도 한번 가 보지를 못했으니 처음 타는 비행기 여행이 된다.
두렵다. 하늘에 뜬다는 게 믿기지를 않는다.

그 첫 비행기를 타고 가는 곳이 지금껏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닌  
저 바깥쪽 세상인데다,
비열하고 교활한 왜놈들이 사는 나라여서 더욱 더 두렵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시대여서 그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때,
어릴 적 늘 교육받았던 일본에 대한 인식이 성인이 되어도
쉽게 사그러 들지 않는다.
여우같은 교활한 눈과 늑대같은 음흉한 입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그래서 많이 두렵다.
비행기타는 것이 두렵고 일본으로 가는 것이 두렵다.

김해 국제 공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은 유일하게 일본 후쿠오카행 뿐이다.
통로를 중심으로 창 쪽으로 두 칸씩의 좌석을 가진 비행기.
아주 작은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의자 손잡이에 손을 꼬옥 고정시키고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하늘을 향해 오른다.
새처럼,
풍선처럼 오른다.
살며시 실눈 뜨고 내려다 본 낙동강.
아! 나는 하늘에 있다.

따끈한 차 한잔과 함께 주어진 입국신고서.
한문으로 칸칸을 메우고 나니,
대마도를 지난다.

김해공항을 뜬지 40분 後.

일본영공.
몇 번씩이나 하카다 공항을 선회하던 날개 한쪽이
깊숙이 내려앉으며 하강을 시도 할 때.
피에트 몬드리안의
회색 윤곽선들과 색면 같은
후쿠오카 평야의 광활한 그리드.
추수를 끝낸 평야 위에로 비행기 그림자가 뜬다.

낙동강과 김해평야,
그리고 후쿠오카 평야,
닮았다.
같이 쌀밥을 먹기에 닮을 수밖에 없나보다.

다른 건
김치와 오싱꼬.

<일본 여행 - Shadha>

****

우리의 일상 그 자체가
매순간 순간 새롭게 떠나는 여행.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똑같이 지나도
언제나 어제와 똑같지 않습니다.
그 언젠가 와도 똑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마다
늘 새로운 여행을 떠나듯 집을 나섭니다.

작은 물굽이를 건너
오래 전에 닻을 내린 목선 곁으로 다가 서려할 때
청정한 하늘아래
푸른빛 안개가 신비감을 더하고,
초록빛 바다에서 솟아오른
은빛살이
깃빨처럼 펄럭인다.

지금 나는 꿈을 꾸고있다.

머언 뱃길 인도양을 건너 태평양으로 든
목선의 돛대 끝에서
푸른빛 노래가 흘렀다.
그 현실이 꿈인지,
어젯밤 꿈속이 현실인지,
지금이 과거인지,
지금이 그 어떤 미래인지,
확고하게 단정 지울 수는 없지만
살아있으면서 그것을 느낀다.
그 처음 만난 풍경들이
결코 낯설지 않음을...

떠돌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떠돌았는지도 모른다.
꿈꾸는 바람처럼..

로마의 골목길에서도,
파리의 세느 강변에서도,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서도,
알프스에서도,
록키 산맥에서도,
나이야가라 폭포에서도,
멜라네시아의 환상적 물빛의 바닷가 곁에서도,
페낭 섬의 인도양 바람이 있는 페랑기 해안에서도,
그것을 느꼈다.

아!
아무래도 난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세상을 정처없이 떠돌던,
낯선 풍경을 쉼 없이 꿈꾸는 바람 이였나 보다.

환상같은 풍경을 가진
작은 물굽이에서도 그것을 느끼니...

<꿈꾸는 바람 - Shadha>



2003.7.31

서해안으로 워밍업 여행을 떠나며
푸른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