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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낙안읍성 後記 본문
낙안읍성 後記
겨울 방랑객
...버스 올 때가 거의 됐는디...
운주사앞 신작로 작은 버스 정류소에 서서
펼쳐진 나주평야를 바라다 보고 있을 때
마을 할머니가 약간 굽힌 허리뒤로 손을 얹은 채
논뚝길로 걸어가시며 던져 주신 말...
그 후로도 30분이 지났다.
논뚝길 저만치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다
다시 버스 정류소앞을 지나치시는 그 할머니.
...아직 안왔는가비여.. 올 때가 거의 다 됐는디...
그리고도 20분이 더 지나고서야
덜컹덜컹거리며 화순행 군내 버스가 왔다.
겨울햇살이 하얀 눈에 반사되어 더 따스하게 느껴지던
시골 버스 정류장에 평온함이 흘렀었다.
화순 고인돌공원앞을 지나
온 마을들과 골목들을 돌고 돌아 화순읍.
황량하기까지한 화순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벌교행 버스를 타고 산넘고 고개 넘고
송광호를 지나 벌교 시외버스 정류장에 당도했다.
새벽에 광주 숙소에서 커피 한잔.
운주사에서 쌍화차 한잔.
화순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종이컵 커피한잔만 마신 터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시장끼를 심하게 느꼈으나
낙안읍성가는 버스가 출발을 서두르고 있어
낙안으로 가서 아침겸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기다리고, 걷고, 덜컹거리는 버스를 계속 이어타고
배까지 고프니 가난한 겨울 방랑객,
가난한 겨울 나그네 같아서 좋다.
운주사에서는 맑았던 날씨가
서해안에서부터 몰려오는 눈구름탓에
점점 더 구름이 많아지고 흐려지고 추워져서
겨울 방랑객의 마음을 더 서둘게 했다.
주입구인 동문 낙풍루로 들어 성곽을 타고
남문과 서문을 돌고 낙안마을 서쪽끝에서부터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을의 중앙부에 있는 관아앞에 이르러
남도 민박 청사초롱 간판아래 동지팥죽이라고 쓰인
글씨에 끌려 낮은 돌담장을 넘어다 보니
평상위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나는 동지 팥죽을 먹던
중년의 남자가 식객으로 친구하자고 한다.
...이리 오세요. 아주 맛있습니다.
서울에서 혼자 왔다는 그 중년 남자는 식사후에도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팥죽을 먹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쉴 새없이 말을 붙였다.
...혼자 자주 여행하십니까 ?
...할머니, 나는 깍두기 김치도 안주시더니
멋진 사람 왔다고 맛있는 거 내 주십니까 ?
심한 시장끼에 큰 그릇의 팥죽 한그릇을 금새 다 비웠다.
그 이후
낙안읍성 버스 정류장에서 순천행 버스를 기다리며
멀리 높은 서산에 해가 걸려 이른 석양이 올 때까지
서울과 부산
중년의 두 남자 방랑객이 같이 동행하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겨울날의 낙안읍성 여행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