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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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동과 어머니
영화 <친구>
겨울비가 내리는 날 밤
온 몸에 심한 한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TV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얼굴 맛사지를 하는
아내곁으로 다가가서 가슴에다 머리를 묻었다.
따스하고 편하다.
...왜 이러는데 ?
젊고 잘 나갈 때는 마누라가 그리 애교를 부려도
귀찮다고만 하더만은...
이제 나이가 들고 힘 떨어지니까 꼭 소금에 절인
배추같아졌네...
아내가 싫지 않은 표정으로 응석을 받아주니
한껏 더 응석을 부려본다.
...나 많이 아프다.
...전국을 자기 안방처럼 그렇게 쉬지않고 다니는데,
그러고도 몸살이 안나면 그게 사람이가 쇳덩어리지...
그런 남편이 측은하게 느껴지는 듯 얼굴을 감싸주는 아내에게
...이렇게 여자의 품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으로 처음 태어났을 때 처음 느낀 경험이
늘 잠재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아프고 힘들 때는 더 그런 것 같다....
라고 말하는 순간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났다.
일찍 홀어머니가 되어 자식만을 위해 사셨던 분.
소풍가기 전 날이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걷던 길이 범일동과 부산진 시장이다.
부산 경제 발전의 중심이 된 신발 산업의
삼화고무, 국제고무, 진양화학등이 교통부를 중심으로
좌천동 가구거리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있어
퇴근시간 무렵이면 신발공장에서 퇴근하는 여공들로
부산에서도 가장 번화하고 활발한 거리가 되었던 곳.
남진,나훈아,이미자,하춘화 리사이틀 등으로 늘 북적였던
각종 쇼의 대명사였던 보림극장.
재개봉관으로 중,고등학생들의 단체 관람 전문극장인
삼성, 삼일극장
교통부에서 조방앞으로 넘어가는 철도위 육교.
교통부에서 범일동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거리 풍경들은
영화 <친구>의 주 무대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어머니와의 어릴 적 추억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다음날
비는 개였으나 추억처럼,
또는 흑백 사진처럼 아스라이 느껴지는 흐린 하늘의 거리,
영화 <친구>의 거리,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있는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