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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김유정驛 그리고 실레마을의 가을 본문

등너머 길(강원)

김유정驛 그리고 실레마을의 가을

SHADHA 2007. 10. 12. 00:28

 




김유정驛 그리고 실레마을의 가을

김유정 문학촌에서





"장인님! 이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박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 더 잘 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김유정 <봄봄>중에서...





하늘이 푸른 가을 아침에
나는 경춘선의 작은 역 <김유정>驛 플래트홈에 내려섰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은 달랑 나 혼자뿐이었고
기차가 남춘천으로 향하고 난 뒤에는 역무원 한사람과 함께 서있었다.
청량리로 가는 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김유정驛舍로 나가는 건널목을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외지에서 온 중년남자 한사람과 중년 역무원은 서로 바라보다 씨익 웃었다.

가을날 한적한 시골역에서 혼자서 만나는 평온한 풍경.
치열한 전쟁터에서 빠져나와 평화로운 휴가를 즐기는 병사의 마음같다.
내일 다시 그 전쟁터로 가야하지만 오늘은 행복하다.

그림엽서에 그려넣어 가을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을 주는 김유정驛을 나와
신작로를 건너서 시골풍경과 함께하는 문학촌으로 향할 때
실레마을이 바라다 보이는 길가에는 코스모스와 노오란 호박꽃이 피어있고
작은 개울가에도, 김유정 문학관의 담장 아래에도 하얀 구절초가
푸른 가을 하늘 아래 꽃무리를 짓고 있었다.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터에 새로 단장하여 조성한 김유정 문학촌.
안으로 드니 김유정 동상과 기념관, 생가와 연못, 소담스런 정자까지,
그리고 뜰 여기저기에 핀 하얀 구절초가 풍경들을 더 평온하게 느끼게 한다.
깨끗하게 단장된 뜰을 거닐며 오래전에 읽었던 김유정의 소설속으로
가을과 추억을 담아 젖어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