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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조선통신사 역사관과 영가대 본문

靑魚回鄕(부산)

조선통신사 역사관과 영가대

SHADHA 2011. 12. 27. 10:28

 

 

 

 

조선통신사 역사관과  영가대

 

 

 

 

 

2011년 4월 21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조선 통신사 역사관이 개관되었다.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는

일반적으로 개화기 이전까지 조선이 일본 에도 막부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통신사의 경로와 교류조선 후기의 통신사는 처음에 양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파견되었지만,

평화가 오래 지속되어 그 역할이 사라지는 대신 문화적으로 선진 문물의 전달 창구로서의

조선 통신사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통신사 행렬이 한양에서 에도까지 왕복하는 데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배로 부산 영가대에서 오사카에 이르고, 다음에는 육로로 갔다.

통신사가 지나는 각 번은 통신사를 국빈으로 대우하며 대접하였고, 일본 유학자 및 문인과의 교류,

그 외에도 일본 민중 문화에 끼치는 영향 또한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남긴 유산으로는 당인의 춤(唐人誦), 조선 가마, 필담창화(筆談唱和)의 시문(詩文)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일본으로부터 고구마, 고추, 토마토, 구리, 접부채, 양산, 벼루, 미농지(美濃紙) 등이 조선에 전래되었다.

통신사는 국왕의 외교문서인 서계(書啓)를 휴대하고,

인삼, 호피, 모시, 삼베, 붓, 먹, 은장도, 청심원 등을 예물로 가지고 갔다.

일본 전 국민적인 축제 분위기 속에서 통신사를 맞이하고, 성대한 향응을 베풀었으며,

통신사의 숙소에서 수행원으로부터 글이나 글씨를 받기 위해 몰려든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636년부터는 막부의 요청에 의해 마상재(馬上才)로 불리는 2명의 광대를 데리고 가서 쇼군 앞에서 곡예를 연출했는데,

그 인기가 대단하여 곡마 묘기나 통신사의 행진을 자개로 새긴 도장주머니가 귀족 사이에 널리 유행하였다.

일본의 화가들은 다투어 통신사 일행의 활동을 대형 병풍, 판화, 두루마리 그림 등으로 그렸는데

수많은 작품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으며,

통신사가 준 사소한 선물을 귀중하게 간직하여 지금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 적지 않다.

통신사가 한 번 다녀오면 일본 내에 조선 붐이 일고, 일본의 유행이 바뀔 정도로 일본 문화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자료글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발췌

 

연말이 가까워진 아주  추운 날이지만 하늘이 너무 푸르러서 걷고 싶은 날,

혼자 점심식사를 하고 자성대공원 산책길에 나섰다가 조선통신사 역사관을 둘러보고

통신사들이 일본으로 떠나기전 안전을 기원하던 영가대를 돌아

부산진 지성(자성대) 돔문을 거쳐 서문으로 나서던 날의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