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3.1 독립운동과 부산포 개항가도 본문
2월 16일 오전, 좌천동 지하철역 3번 출구 쪽 엘리베이터에서 타고 내려 가구점 사이 골목으로 정공단 쪽으로 향하면 만나는
<역사 스토리 골목> 태극기와 3.1 운동의 벽화들을 보면서 가면 항일 독립운동가 정오연 생가터를 만난다.
그 맞은편에 자리잡은 <정공단>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을 지키다 순절한 첨절제사 정발(鄭撥)을 비롯한 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1766년 부산진 첨사 이광국이 부산진성 남문 바깥에 설치한 곳이다.
부산(釜山)이란 지명은 지금의 동구 좌천동에 있는 떡시루 모양의 증산(甑山)의 외양을 본 딴 것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의 부산은 독립된 지방행정단위가 아닌 부산포로 동래현과 그 속현이었던 동평현 관할이었다.
15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부산이라는 지명으로 널리 불리게 된다.
그 뒤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로 개항장이 되었다.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마을이 현재는 한국의 제2도시로,
동북아시아의 국제항으로 발전했다.
정공단 담벼락을 따라 오르면 <부산진교회>와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만난다.
부산진교회는 117년 전 뿌리내린 부산 최초의 조직교회이자 부산의 모교회로 한국 교회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해오고 있다.
1891년을 교회의 시작으로 본다. 호주 장로회선교부의 여선교사 맨지스(Menzies)가 부산에 도착해 선교를 시작한 해다.
이후 1900년 10월 왕길지(엥겔, G.Engel) 목사가 초대 당회장으로 부임하면서 교회의 모습을 더욱 가다듬게 된다.
1901년에는 70여 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정도로 교회의 규모가 커진다.
부산진 일신여학교
개항기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건립된 부산 최초의 근대적 여성 교육 기관인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교사.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3월 11일과 4월 8일에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만세 시위는 부산 지역 3·1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산복도로 증산로로 오르는 언덕 담벼락에 <기미독립선언문>이 새겨져 있고, 동구 출신 독림운동가 기림 벽이 있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으로 가서 부산진교회의 지붕과 북항 풍경을 본다.
그리고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승강장에 내려서 증산공원과 좌천 시민아파트 앞에 이르러서 부산진성의 정발장군
상징 장식벽 앞에 서서 부산의 북항을 바라보며 일본에 대항하며 살았던 선조들의 삶을 느낀다.
3일 1일 독립운동을 생각하며 부산포 개항가도를 거닐었다.
그리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증산공원(부산진성)으로 향했다.
역사 스토리 골목
정공단
부산진교회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미독립선언문과 동구 출신 독립운동가 기림 벽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
경사형 엘리베이터
부산진성의 정발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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