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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회연서원 본문
회연서원
檜淵 書院
흙담길 따라
회연서원 한바퀴 돌았다.
부서진 기와조각 너머
유허비 업은 돌거북이
우뚝 고개를 내민다.
물소리, 벌레 소리 따라 와
귓바퀴에 맴돌고
바람 한자락 머물다 간다.
세월의 풍상 고스란히 짊어진
느티나무 한그루는
성리학 정 선생의 유장했던
강의 실어 담았을까
오늘 여기 다녀가는 70인의 문학도,
글 싹 틔울 거름 되라
호통 소리 들리는 듯.
되돌아본 서원 한복판
檜 淵 書 院
편액이 한석봉을 부르고
그 옆에 우암 선생도 고개 내밀건만
시대를 넘은 아이들에겐
한갖 역사의 유물에 지나지 않고
살아있는 잔디깎이 시끄러운 소리 속에
탕탕히 흐르는 대가천 강물만이
인간의 흔적을 실어 나른다.
....로즈마리님의 <회연서원에서>...
회연서원은
조선중기의 성리학자인 한강 정구(1543-1620)선생이
선조 16년(1583)에 회연초당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여
많은 국가동량의 인물을 배출하였던 곳이며,
한강의 문도들이 인조5년(1627) 회연초당 자리에
회연서원을 건립하여 한강선생을 주향으로 모셨으며,
숙종 16년(1690) 사액을 받았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사원철폐 때 폐원되었다가
1984년에 다시 사림에 의해 복원되었다.
정구선생은 동방 5賢의 한 분인
외증조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학문의 연구대상을 온 우주의 공간으로 삼고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예학 등 여러 학문에 통달한 대학자였다.
관직에는 별로 뜻이 없었으나, 부득이 외직만
맡아오다가 뒤에는 사헌부 대사헌등을 역임하고,
광해군 12년(1620) 선생이 돌아가시자
문목의 시호를 내리고 효종때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서원 앞뜰 백매원에는 신도비가 서 있으며,
유물전시관에는 선생의 저서및 문집의 각종 판각등
유물, 유품이 보존되어 있다.
...회원서원 자료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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