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3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라
06/23
나뭇잎 사이로 - 정 호 승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라 모든 적은 한때 친구였다
우리가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지 않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고요히 칼을 버리고 세상의 거지들은 다 가을의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라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지 않고 어떻게 우리의 눈물이 햇살이 되겠는가 어떻게 우리의 상처가 잎새가 되겠는가.
하얀새님. 어제 특별히 챙겨준 릴케의 시, 너무나 고마웠답니다. 하얀새는 작은 새가 아니군요. 높이 날아 먼 곳까지 본다는 애릭 시갈의 갈매기 아닌가요? 온통 나를 응시하는 시선과, 조명해주는 눈부신 햇살에 부끄럽습니다.
우리의 눈물이 햇살이 되고 우리의 상처가 잎새가 되는 아름다운 땅을 향해서 쉼없이 걸어가야 하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돌아갈 곳을 그리워하면서도 더 멀리 떠남으로 이율배반의 쾌감을 즐기나 봅니다.
사랑을 곁에 두고 외롭다고 몸서리 치는 것이나, 행복을 찾아 발 부르트도록 다니다 돌아와 파랑새를 만나는 서성임 말입니다.
새벽에 출발한 여덟 시간의 기차 여행으로 가슴 가득 초록빛 논과 밭을 담아 왔습니다. 모와 채소 사이로 물고기 한마리 노니는 어항 같은 가슴이 되었지요.
오늘부터는 밤이 낮보다 길어진다지요. 충분히 쉬시고 건강한 나날 되세요.
'00.6.23 좀 고단한 여행자 푸른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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