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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아스라42 18일 지리산 山行記 본문

아스라의 첼로

아스라42 18일 지리산 山行記

SHADHA 2004. 2. 8. 18:00


아 스 라



C03



18일 지리산 山行記

10/19









어제 지리산엘 갔습니다.
아니 성삼재까지만 갔습니다.
올해로 4번째 산행길이건만 번번히 노고단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휴식년제로 인한 사전 예약 객만 노고산 가는 길을 밟아 갈 수
있다는 말에 실망하면서 그렇게 타는 봉우리를 내려 왔습니다.
타들어 가는 골짜기의 단풍을 보면서 캐서린을 찾아 사막의
길프 캐비어 동굴을 찾아가는 알마시의 격렬한 고통이 생각났습니다.
심장에 얼음으로 만든 소금 못을 찌르는 붉은 선혈같은
남자의 눈물이 생각났습니다.

산을 물들이는 그 고운 단풍은 어두운 동굴안에서 그를 기다리던
캐서린이 엉엉 소리내어 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캐서린의 '쇄골절흔'처럼 드러나는 산의 숨결.골무 목걸리를
걸고 다니는 그녀의 목뼈 부근에 어린 고독한 남자의 사랑.

푸른 나무와 비가 내리는 지상의 지평선을 같이 거니는
그들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가을의 해질녁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알마시, 제프리,한나, 킵 장교, 하디의 눈에 비쳐 구워지는
죽음 혹은 삶의 그 치열한 과정들...
독한 죽엽청주 한잔과 같은 마음의 고요.
그리고 헤로도투스.

노고단은 흡사 그가 읽는 책 속에 간간히 끼워놓은 그의
비밀한 장소에서 울려나오는 향기로운 바람소리와도 같았습니다.
꽃들이 흩어진 그 바람 길을 얼마나 밟아 보고 싶었던지요?
구례 산동 마을이라는 팻말을 지나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심원 마을.
거기서 바라보는 골짜기의 단풍이 마치 치마를 두른
여인의 마음처럼 두근거렸습니다.
타는 듯한 戀心으로 깊어진 골짜기는 놓치기 싫은 서로의 숨결을
아프게 아프게 삭여내고 있었습니다.
그 산을 오르는 나그네의 엷은 탄성도 잊은 채.

휴일이 아니어서 생각만큼 차가 밀리지도 않았고 느릿한 꺽어짐으로
휘어지는 산들이 내내 마음의 골짜기에 영사기처럼 감겼습니다.
설레이는 산들의 말하지 않는 그 고요가 움직이지 않는 갈앉은 고요를
일깨우며 일렁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리산, 내가 아는 어느 희미한 풀꽃의 기억처럼 그 커다란
골짜기의 붉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상상 속에선가 흉금을 알 수 없는 유도화가 바람에 흩날립니다.
사막을 지나는 낙타의 혹에는 그녀를 그리며 죽어 가는
알마시의 진한 액체가 고여 있을 것 같습니다.
고통스러운 그의 눈에 유도화 꽃잎같은 죽음을 선물하는
한나의 고통스런 눈물이 담겨 있을 것만 같습니다.





조용미 / 자리

무엇이 있다가
사라진 자리는 적막이 가득하다

절이 있던 터
연못이 있던 자리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
꽃이 머물다 간 자리

고요함의 현현,
무엇이 있다 사라진 자리는
바라볼 수 없는 고요로
바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