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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삼신산 쌍계사 본문
삼신산 쌍계사
三神山 雙磎寺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머리)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3점 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현재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진 금당(金堂)에 금당선원이 있어
눈푸른 납자들의 정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통강원(傳統講院)과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설치되어
바야흐로 선맥과 강맥,
그리고 율맥의 법통이 바로선 수행도량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쌍계사 자료문헌 중에서...
일주문
속세를 떠나 불도에 들어서는 첫째 관문으로서
양쪽에 기둥 하나씩을 세워 만들었다 하여 일주문이라 하는데
항상 한마음 한뜻으로 수도정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축양식은 다포식(多包式)으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는데
내외4출목(內外四出目)으로 되어 있다.
공간포(空間包)에는 정면에 3구, 측면에는 2구가 놓여져
포(包)간격은 일정하다.
기둥위에는 주두(柱頭)가 없이 창방(昌枋), 평방(平枋)위에
대접 받침을 놓고 포를 설치하였다.
금강문
건축양식은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익공식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정면 어간을 개방하고 양측간을 벽체로 막아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의 일반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천왕문
천왕문은 사천왕을 봉안한 문이다.
건축양식은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익공식(翼工式)이며,
금강문과 같이 양측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았으며
중앙 어간은 개방하고 양측간은 벽체로 마감하였다.
팔층석탑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三顆)와
산내 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二顆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一位)를 모셨다.
팔영루
이 곳은 우리나라 불교 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774년-850년)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음악(梵唄)을 만든 불교 음악의 발상지이며
훌륭한 범패 명인들을 배출한 교육장이다.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써
어산(魚山)범패를 작곡했다고 해서 팔영루라고 한다.
진감국사 탑비
이 비는 신라 정강왕이 신라말의 고승 진감선사 혜소(774년-850년)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던 옥천사(玉泉寺)를
쌍계사(雙磎寺)로 명명하고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857-?)이 비문을 짓고 환영스님에 의해 887년에 건립.
비문의 자경은 2.3cm의 해서이다.
이 탑비는 귀부와 이수 및 비신을 완전히 갖추고 있으며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가운데 하나이다.
귀부의 등에는 간결하게 귀갑문이 조각되었으며
귀두는 용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귀갑의 중앙에는 방형의 비좌가 마련되어 비신을 받게 되었는데
네면에 운문(雲紋)이 양각되어 있다.
적묵당
이 건물은 참선하는 스님 중 초심자가 수행하던 곳으로
건축양식은 정면5칸, 측면3칸의 맞배집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설선당
신라 문성왕 2년(840년) 진감국사가 초창한 맞배집 형태로
스님들에게 불경을 강의하는 곳으로 중요한 교육장이다.
대웅전
대웅전은 진감선사가 신라 문성왕 2년(840년) 초창하였다.
대웅전에는 세분의 부처님이 계신데
중앙이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이고
좌측이 아미타불, 우측이 약사여래불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 기와집이다.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외 3출목 내 3출목으로
기둥위는 물론 기둥사이 평방위에도 짜올린 다포식이다.
첨차는 교두형이고 살미첨차의 바깥끝은 쇠서로 되었고,
안쪽은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건실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다.
명부전
명부전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위시하여 명부 시왕이 안치된 전각으로
조선 숙종 13년(1687년)성안대사(成安大師)가 창건하였고,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기둥위에 놓인 주두(柱頭)와 창방(昌枋)위에 직접놓은 소로로써
방형부재(方形部材)로 된 첨차와 행공첨차를 받치고 있는
주심포식(柱心包式)과 흡사한 익공계 건축이다.
나한전
이 전각은 주불인 석가여래와 16나한을 모시고 있다.
신라 46대 문성왕 2년(840년) 진감선사가 초창하였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경내의 명부전과 흡사하게 주두와 창방위에 얹은 소로로써
방형의 첨차와 행공 첨차를 받치고 있는 익공계 건축이다.
청학루
쌍계사 팔영루와 더불어 금당 일원 전각들의 관문 역할을 한다.
형태 및 구조는 삼층 목조기와와 맞배집으로 정면향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고려 공민왕 6년(1357년)에
진정국사가 창건하였다.
팔상전
이 전각은 고려 충렬왕 6년(1290년) 진정국사가 초창하였고
건축양식은 기둥위로 평방을 돌리고
기둥위와 그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한 다료계 양식의 팔작집이다.
공포는 외 3출목 내 4출목을 두었는데
외부제공(外部諸工)의 끝은 장식조각이 없는 강직한 쇠서로 되었고
내부는 모두 교두형으로 되었다.
내부 불상위로는 간단한 닷집을 두고 그 위로는 우물 천정을 가설하였다.
비교적 다출목의 공포를 결구하여 내부가 높직하게 보이나
단순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세부에서 일부 장식적인 조각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영모전
이곳은 쌍계사의 창건주인 진감선사의 진영을 비롯,
지순, 사명, 부휴, 벽송, 소요 대사 등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특히 이 법당은 불교의 진리와 중생에게 생명의 감로수를 내린 뜻을
길이 숭모한다는 뜻에서 영모전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홑처마 맞배집 건물로
포작(包作)을 짜지 않은 간결한 도리집으로
정면에는 모두 2분합의 세살문을 달았다.
금당(육조정상탑전)
이 금당에는 중국 선종의 제 6대조인 혜능대사의 정상(頂相),
즉 머리를 모시고 있다.
신라 성덕왕때 당나라의 혜능대사를 만나 보는 것이 원이었던
삼법스님이
당나라에 유학했을 때에는 혜능대사가 이미 고인이 되었으므로
그의 무덤을 찾아 머리를 모셔와 돌로써 만든 석감(石龕)을 넣어
이곳 땅밑에 안치했다는 것이다.
그후 신라 민애왕때 진감선사가 건물을 세워 육조영당이라 이름했으며,
현재 석감위에 세워져 있는 7층 석탑은
1800년대에 주변에 있던 목압사의 석탑을
용담스님이 옮겨와 세운 것이며,
이후부터 육조정상탑으로 불리웠다.
현재의 건물은 1979년 중수된 단층의 목조기와집으로
다포의 팔작지붕이며 화려하게 단청되어 있다.
정면에 걸려있는 현판은 조선시대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쌍계사 자료 문헌중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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