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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운명아! 너에게 결코... 본문
운명아! 너에게 결코 지지 않겠다.
山을 오르며
죽지 않을 만큼만 아프게 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 만큼만 배고프게 하고
좌절하지 않을 만큼만의 희망을 갖게한다.
머물 집이 없어지면 바로 머물 곳을 주고
일터가 없어지면 바로 일터를 주고
벼랑끝에 서면 바로 줄을 던져 준다.
그리 다시 일을 하게 하여
쌓이지 않을 만큼만의 富을 갖게 하고
富가 쌓이려하면 바로 다 거두어간다.
그런 굴곡 많은 삶이 몇차례 반복되어
나는 그런 삶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희망과 좌절이 교차되고 반복되는 사이에
나는 늘 새로운 삶의 진리들을 배우고 느껴 왔지만
고되고 고통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미 예언되고 예상되어 있어 그 순리를 따르기로 하여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인 나의 마지막 인생 시험.
...이번이 가장 힘들고 아플겁니다.
시련의 마지막이 되는 최종 평가 시험이라 생각하고
슬기롭게 잘 견뎌내세요.
나는 山으로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나 자신의 존재성에 관하여 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작아져 가는 나를 본 것이다.
그런 나를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끝없이 계속되는 오르막길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었지만
멈추거나 포기 하지 않았다.
가슴에 심한 통증이 올 정도로 고통스러웠으나
그런 나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지 않았다.
끝내 산정에 올라서서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숨을 맡기고
외쳤다.
...보세요, 나는 나의 운명에게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운명 !
그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에게서
나에 대하여, 나의 운명에 대하여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이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
어떤 큰 스님께 들었다는 나의 운명에 대해 말하셨고
그 이후에도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철학하시는 분이든,
靈으로 보는 무당이라 불리우는 보살님이든,
고명하신 큰스님이든,
내게 말해준 내 운명은 거의 똑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예언들은 철저히 무시했다.
당시 나는 모든 것은
인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이루워진다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이 같다.
그러나 1998년에 모든 것을 다 잃은 후,
비로서 나는 그들이 내게 경고하거나 예언한 것이
우연일 수도 있으나 다 들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그 분들의 말을 아주 맹종하지도,
아주 무시하지도 않았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한결같이 내게 특별하게 대해 주었다.
내게 자문을 해주고도 복채라는 것을 받지 않는다.
복채를 드리면 한결같이 내게 다시 돌려주신다.
...다음에 크게 일어나시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세요.
심지어는 나의 극한적인 어려움에서는 그 분들이 오히려
미리알고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나누어 주시기까지 했었다.
내게는 소설같거나 영화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그냥 지나가는 나를 나무그늘 아래 불러 앉혀서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조금만 더 고생하라며 격려해 주시며
나의 운명을 일러주시던 하얀 모시적삼 입은 낯선 할아버지 도인.
돈을 싸들고 태백산을 찾아들어도,
고위공직자나 재벌이나 정치가가 줄을 지어 찾아와도
만날 필요가 없는 인연이거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면 만나주시지 않는다는
현세의 도선대사라고 불리우시는 설송 큰스님께서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나를, 뵈러 갈 때마다
밤이든 낮이든 산사에 도착하면 바로 친견하게 해주시고
불교신자도 아니고 부탁드리지도 않았는데
주변 스님들도 감당치 못할 정도라고 놀란 높은 佛名인
無盡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2004년 눈이 채녹지 않은 이른 봄,
설송스님을 마지막으로 친견하였을 때
...때는 왔으나 다가올 국운이 좋지 않아, 조금만 더 고생해...
인사드리고 돌아나오는 내 귓전에다 마지막 말씀을 던지셨다.
...버텨야 해 !
솔직히 나는 태백산을 돌아나오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무슨 대기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조그만한 설계사무실 하는건데 국운이 무슨 상관이람...
놀랍게도 지금 돌이켜보면 그 분의 예언이 맞아 버렸다.
2004년 이후 내가 모든 것을 내어 걸고 움직인 것은
건축 설계가 아니고 대단위 건축사업들의 추진이였다.
그로하여 그 이후
건설경기를 말살시킨 현 정권의 실패한 건설정책의
태풍속에 휩쓸려서 다시 가진 것을 다 잃었다.
많은 교훈과 지식을 얻으면서...
어머니가 남겨 주신 말씀과 몇 몇 철학하시는 분들과
몇 분 보살님들, 그리고 두 분의 큰 스님.
그리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어떤 도인님까지
내게 일러주신 내게 주어진 운명은 다 똑같다.
나의 운명...
굴곡이 심한 삶을 살면서
고통과 배고픔과 아픔을 두루 거치면서 성숙해져서
때에 이르면 크게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나를 위한 富가 아니라 나를 빌어
많은 힘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다시 나누어주게 되는
역할을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 났다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처음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백번도 더 들은 이야기.
겉으로는 나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나는 내게 주어졌다는 그 운명에 의지하여
안위하거나 버티고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
더 힘들고 괴로운 것은
스스로 느낄 때 나 자신이 그런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이다.
자기 가족조차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데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냐는 괴리감이며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조금씩 떨어져 가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위의 모든 친구들이며,
오랜 동료들이며, 의형제들이든, 지인들이든,
내가 다시 크게 일어 설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
의심치 않고 다 기대해 주고 따랐으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의 실망이 커져감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서도 그리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은연중에 믿어 왔던
나의 운명과 다시 싸워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외쳤다.
...나는 나의 운명에게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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