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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 장보고의 청해진 본문

靜香의 땅(전라)

해신 장보고의 청해진

SHADHA 2007. 8. 8. 00:29

 




해신 장보고의 청해진 淸海鎭

여름에 떠난 완도 여행 2





장보고는 당나라의 徐州에 건너가 무령군소장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와 노비가 된 동포들의 참상을 보고 분개, 벼슬을 버리고 귀국하여
해적들의 인신매매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하여 청해에 군영을 설치하였다.
장보고는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중국과 일본 해로의 요해처인 청해에 鎭을 설치하고
가리포에 성을 쌓아 항만을 보수,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였다.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서남 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한 그는
당시에 성행하던 중국의 해적을 소탕하는 한편,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들어 동방무역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결국 청해진은 중계무역장으로서 서남 해로의 요해처 구실을 하였다.

한민족 최초의 세계인, 해양 경영의 선구자로 불리는 장보고.
1200년 전 동북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하며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장보고의 땅 청해진 장도는
물때에 따라 하루 두번 장좌리 마을과 갯벌로 연결되어 걸어서 건널 수 있다.
마을에서 장도까지 180m 하루에 두차례 썰물때는 갯벌이 드러나므로 걸어서
섬에 들어 갈 수 있고 물이 들어오면 다시 바다속의 섬이 된다.
장도 너머로 고금도,신지도같은 섬들이 보이고 섬들 사이로 약산도도 보인다
당시의 유적을 발굴 확인하는 작업이 1991년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섬 위에서 토성자리와 큰 건물자리가 여럿 확인되었고 통일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당초문,연화문 암수 막새기와, 철제칼과 항아리들이 출토되었다.
물이 빠졌을 때는 장도 남쪽 갯벌에서 목책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장도의 정상 평지에는 둥그런 상록수의 작은 숲이 있고 나무가 품위있게 무성하여
장보고의 정령이 살아 숨쉬는 듯한 그 상록수 숲안에 장보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장좌리 사람들은 해마다 정원 대보름날 새벽 이곳에 와서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지금도 장도의 청해진에 대한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였다.





지난밤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전복과 조개를 구워먹고
새벽 2시가 다 되어 숙소로 돌아와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40~100mm 의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약간의 불안감을 준 탓인지
아침 6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카푸치노 한잔을 마시며 청해진으로 향했다.
청해진,
완도로 달려 올 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였다.
海神 장보고의 웅대한 꿈과 기상이 남겨져 있는 곳.
그 오랜 흔적을 따라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하늘은 아직 맑고 해가 동쪽 바다에서부터 떠 오르고 있었으며
장좌리 마을에서 장도사이는 썰물로 청해진으로 들어서는 바다문이 열려 있었다.
갯벌위를 거닐어 한창 복원공사 중인 청해진의 관문을 지나 장도의 정상을 향해 오른다.
관문외에 2개의 누각이 완성되어 있었고 장도의 정상부를 감아도는 토성에는
초록빛 잔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 土城의 성곽을 따라 걸으며 1,100년전 이곳에 머물며 살던 사람들의 삶을 느끼려 했다.
그리고 청해진 그 섬에 세워졌던 건축물들의 형상들을 상상하기도 하며
남해 다도해의 해 뜨는 아침 풍경을 즐기며 산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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