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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영도 절영 해안 산책로에서 본문
영도 절영 해안 산책로에서
가난한 소풍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던 그 길에서,
별처럼 맑은 이슬을 보았다.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갈 때라도
길을 달리는 한, 빛은 있다.
고난의 순례길, 눈물을 흘리면서도
씨를 뿌리러 나가야 한다.
이제 길은 내 뒤에 있다.
...신영길의《초원의 바람을 가르다》중 <빛은 있다>...
사무실에서 C소장과 다음주 업무상 북한의 개성공단으로 가는 일정을 조율하고
몇군데 전화 연락을 하고 나니 또 할 일이 없어졌다.
일상중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일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수입으로 다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설계 계약을 하기 위하여 현장답사도 하고, 계획도 하고, 사업분석도 해주어야 한다.
하여, 타당성이 있고 사업성이 있어야 공사를 하기 위해 설계 계약을 하고 수입으로 직결되는데
요즘은 하늘에 볕따는 것만큼이나 계약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전국에 걸친 현장을 뛰어 다니며 답사하고, 성심껏 계획설계와 사업분석을 해주며
마치 마른 논에 물을 뿌리고 씨앗을 뿌리듯 쉬지 않고 열심히 해왔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검토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동안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뛰던 사람들이 바짝 엎드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하루에 하나꼴로 건설회사들이 부도가 나고 있는 어두운 현실앞에..
꼭 그것이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마저도 없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경기가 끝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점점 많아지고
그들은 내게 다른 계기를 찾아야 되지 않느냐고 종용하기도 한다.
건축을 공부했고, 평생 건축설계를 하며 살았는데 무엇을 하고 살지 ?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사업의 욕망때문에 그것을 포기했고
성공한 사업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몇번 있었으나 그것마저도 다 털어 버렸다.
그러므로 나의 건축인생에서 건축가로서, 사업가로서도 무엇도 남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까지 내 인생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을 만회할 기회를 위해 쉬지않고 준비해 왔으나 모든 조건들이 더 악화되어 가기만 한다.
점점 더 그 알 수 없는 늪은 깊어져만 간다.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숨통이 막혀옴을 느껴 자유로운 숨을 쉬고 싶었다.
하여 단촐한 도시락 하나 사서 열릴 수 있는 곳까지 다 열린 남해바다.
그 남해바다가 있는 영도 절영 해안산책로로 달려갔다.
지난밤까지 내린 비로 해안은 젖어 있었고 바다는 물안개에 덮혀있었으나,
나는 그 바다곁에서 바람과 물안개와 바다풍경과 바닷냄새, 갈매기와 벼랑에 핀 꽃들,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들고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일에 몰두해야 할 시간에 일을 하지 않고 바다로 나온 소풍.
일하지 않는 것보다 더 가난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그래서 물안개 낀 남해바다 소풍이 참 가난하게 느껴지는 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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