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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영도 흰여울길에서 본문

靑魚回鄕(부산)

영도 흰여울길에서

SHADHA 2008. 7. 6. 13:04

 

 

 

운이 꼬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초래한다.
하지만 헤어나는 방법이 있다.
일부러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무조건 베풀어라.
그러면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된다.

...이외수의《하악하악》중 운이 꼬일 때...


물안개 자욱하게 낀 장마철의 바닷가에 가난하고 외로운 소풍을 와서
파도와 갈매기와 바다를 마주한 해안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줄곳 나의 주변을 서성이다가 저만치 뒷쪽 바위에 앉아있던 한남자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 같이 공존하고 있는 그가 자꾸 의식되어 몇 번 돌아보았으나
그는 나를 경계하듯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도 쓸쓸한 소풍을 나온 사람이지만 외형상 그는 나보다 더 쓸쓸하고 초라해 보였다.
혼자만의 식사를 끝내고 도시락을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통에다 버리고 그 자리를 떠서
절벽으로 연결된 난간을 타고 올라가다 그가 의식되어 뒤돌아보니 그는 그 쓰레기통을 뒤지며
내가 먹었던 도시락에 음식이 남았는지 비닐봉지를 뒤지며 확인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거기서 누군가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 하나를 찾아내어 피우기 시작했다.
아 ! 그런줄 알았으면...
그리 행복하지 않은 마음으로 혼자 쓸쓸하게 하는 식사가 부담스러워 남기고 싶었으나
음식물 남기는 것이 싫어서 다 먹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줄 알았으면 그와같이 나누어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갑자기 그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바지 주머니를 뒤져보니 달랑 천원짜리 두장이 남아있었다.
밥을 사먹을 수도 없는 금액이고, 담배 한갑을 제대로 살 수도 없는 금액이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을씨년스럽고 민망한 마음으로 이천원을 건넸다.

...식사를 나누었으면 좋았을텐데... 제가 가진 돈이 이것밖에 없어 미안합니다.

순간 검고 어둡던 그의 얼굴에서 물안개가 벗겨지는듯 밝은 미소가 번졌다.
무엇하나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돈을 건넨 내가 너무도 부끄러워서 잦은 걸음으로 서둘러 가는데
그는 한참이나 따라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아픈 것과 배고픈 것만큼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을 했었기에
마음이 더 아리기도 했지만 괜히 씨익 웃음이 났다.

...지나 내나 몸과 마음은 가난해도 바닷가를 산책하는 여유는 있으니 그래도 낭만은 있네...

그렇게 절영 해안산책로를 서쪽끝까지 걸어와서 제 2 송도라고 불리우는 곳.
해안의 높은 벼랑위에 남쪽 바다를 향하여 자리잡은 흰여울길을 걷는다.
큰 길에서 좁은 골목길을 내려오면 바다가 보이는 풍경.
바다를 향한 높은 벼랑위 허리까지 오는 담장을 따라 골목길이 길게 이어지고
그 길따라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들이 있는 곳,
흰여울길은 어쩌면 가장 부산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흰여울길을 걷는 사이 물안개가 걷혀지고 햇살이 밝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운이 꼬일 때,
나는 흰여울길을 거닐며 지난 어느해 지중해 아말피 해안을 산책하던 순간을 떠올리고
쓸쓸한 마음 한켠으로부터 행복한 순간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