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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白과 回想

전업주부가 된 남편

SHADHA 2008. 7. 24. 19:50






전업주부가 된 남편

비내리는 날 성북고개 산책길에서





  이 글은 훗날, 오늘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하여 일기처럼 적은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 아내를 본다.
  가녀린 아내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인 나보다 더 생활력이 강해지고 억척스러워진 아내였지만 여린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온실에서 자란 듯 세상 물정도 모르고 여리던 아내가 강해지기 시작한 것은
  IMF 이후 2차례에 걸친 나의 사업실패와  경제적 몰락, 그리고 내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후부터
  남편을 대신하여 현실로 다가오는 거친 세파를 넘기 시작하면서 그리 변해 가기 시작한 것 같다.
  잠든 아내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미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나를 보게 되었다.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가장이었던 사람이 전업주부에 이르기까지 꽤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아내와 자리 바꿈이 시작된 것은 1999년 IMF직후 경제권이 아내의 손으로 넘어간 이후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가족들과 쇼핑을 가거나 외출을 하면 내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앞장을 서고
  아내는 카트를 밀며 그 뒤를 따르며 물건을 살 때마다 나의 의견을 묻고는 했다.
  그러나 경제권이 아내의 손으로 넘어가고 난 이후부터는 아내가 앞장을 서고
  내가 카트를 밀며 그 뒤를 따라야 했고, 아내는 나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쇼핑을 했다.
  가정내부의 힘의 균형이 아내 쪽으로 기울어져 갔고, 딸들이 커갈수록 아내의 권력은 강해졌다.
  그 후 2001년 후반기부터 2003년까지 다시 사업을 본격적으로 재기한 후, 
  가정 경제권은 아내가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나 내가 그보다 큰 외적 경제권을 가짐으로써
  힘 있고 능력 있는 남편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있어 짧게나마 힘 있는 가장의 자리로 복귀했었다.
  그러나 2004년에서 2005년에 이르는 또 한 번의 사업 실패에 따른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자
  그 이후부터 모든 경제권은 다시 아내의 손에 들어가고 나는 아내의 영향권 안에 들고 말았다.

  그 이전에는 남편인 내가 가사를 돕는 것은 아내도, 나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따금씩 아내와 가족들을 위한 이벤트를 하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바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의 계속된 불경기로 집에 생활비를 제대로 가져다주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자
  집안 생활을 위해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아내는 바빠지기 시작했고,
  나는 열심히 일을 하였으나 아내의 말대로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고급 백수가 되어갔다.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따금씩 아내보다 먼저 퇴근하는 날이면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해놓고 김치찌개도 만들어 놓고는 했었다.
  딸아이들이 아빠가 만든 김치찌개가 맛있다는 말에 힘을 얻어 가끔씩 그리 하였다.
  아내는 남자가 돈이나 많이 벌어 올 궁리를 해야지 하며 가사 돕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의 사업은 점점 침체기에 들어가 더 어려워지면서 여유시간은 많이 지고
  집안의 가사를 바쁜 아내 대신 조금씩 도와주던 것이 이제는 나의 일이 되어 버렸다.
  누가 그리 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간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난 다음,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오후 서너 시경에는 집으로 돌아와
  모든 방의 창을 다 열어놓고 청소기부터 돌리고 밀대 걸레로 바닥을 다 �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주방 개수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난 다음, 세탁기에서 아내가 돌려놓고 간 빨래를
  옥상에 내어 걸 것은 걸고, 건조대에 말릴 것은 털어서 널어놓고, 개어놓을 빨래는 개어서 정리해 놓는다.
  그다음은 쌀을 씻어서 압력밥솥에 넣어 불리고, 삶아 불려진 콩을 믹서기에 넣고 땅콩과 함께 갈아서
  큰 딸아이가 우유에 함께 마실 수 있도록 준비하여 냉장고에 넣고
  냉커피도 타서 유리병에 넣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난 다음에야 샤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요즘 나의 정해진 일과가 되어 버렸다.
  가끔은 딸아이에게 전화를 하여 귀가 시간을 확인하고 무엇을 해 놓을지 묻기도 한다.
  삶은 감자가 먹고 싶다면 감자를 깎아 소금과 설탕을 적당량 넣고 삶아 놓고,
  아빠표 누룽지가 먹고 싶다고 하면 프라이팬에다 찬밥을 얹어 누룽지도 만들어 놓는다.
  이 단계까지 오는 과정에 설거지 하는 일이며, 빨래 너는 일까지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아내에게 타박도 받기도 했었고, 된장찌개, 갈치찌개, 계란찜 등 요리하는 방법도 배웠다.
  하여 지금은 가사를 하는 것이 일상의 습관이 되어서 아주 자연스러워졌고
  내가 생각해도 대견스러울 만큼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아내가 내가 주도해서 하는 가사를 가끔씩 도와주는 역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내도 가사일을 자주 하지 않게 되니 가사에 점점 소홀해 가는 것 같은 경향이 짙어졌다.
  처음에는 고생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시작하였으나 평생 하지 않던 짓이기에
  나 스스로에 대한 괴리감으로 많이 우울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가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오랫동안 아내가 식사 준비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키우고
  다시 저녁식사 준비하고 치우고 하는 참으로 고된 노동을 묵묵히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아내들이 집에서 하는 가사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란 것이다.

  하여 내가 다시 바빠지기 시작해서 아내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고
  집에 머물게 하더래도 아내의 가사를 지속적으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잠든 아내의 여린 어깨를 바라보다가
  문득 스스로 전업주부가 된 남편이 하게 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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