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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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마린시티의 스카이라인
30년 전 내가 線 그은 땅
약 30년 전, 매립지로서 아무것도 없던 땅, 마린시티,
내가 소속된 건축설계회사에 기본계획 용역이 주어졌고 나는 그 기본계획업무의 핵심 일원이 되었다
내 나이 29살에 그 매립지에 민락동에서 연결하게 될 수영 제2 호교에서 시작하여 해운대 오션타워 앞 하천을 복개해서
해운대 바닷가 메인도로를 만드는 마리나 전체 부지 도시계획의 기본계획을 했었다.
수없는 고민과 연구를 거듭해서 약 6개의 기본계획안을 만들고 공공시설부지(현 요트경기장 일대),
저층 아파트 부지(대우마리나 아파트 일대 부지), 상업지 및 고층아파트 부지 등을 구분해서 만들었었다.
당시에는 초고층아파트가 생길 것이라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마린시티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고
내가 그어놓은 연필선을 따라 도로가 만들어지고 건축물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린시티과 나와의 인연도 계속되었다.
처음 개발된 대우마리나 1차 아파트 분양권이 내게 주어졌으나 당시 새로 다른 아파트를 구입한 직후라서 포기하고
(후에 프리미엄이 엄청나게 올라서 땅을 치고 후회하기도 했다)
대우마리나 3차아파트부터 내가 만든 회사에서 감리계약을 해서 감리업무를 맡았고,
설계 당시 부산의 단일 건축물로서 최고 높이(지하 5층, 지상 20층), 최대 규모 (약 2만 5백 평)의 오션타워를
건축사로서 직접 계획하고 설계를 책임 지휘하는 행운을 얻어서 내가 연필로 그어놓은 해운대 바닷가 대로,
오션타워와 그랜드호텔 전면에 흐르던 하천을 복개해서 도로를 만들어 마린시티와 동백섬, 해운대가
하나가 되는데 일조를 했다.
그러고도, 그 해운대 바닷가 대로 곁에 지어진 동쪽 끝 크리스털 비치까지 몇 개의 설계는 계속 이어졌다.
또한 마린시티쪽에도 크고 작은 몇 개의 설계를 하게 되었고,
1999년 3월 IMF사태로 소유했던 4개의 회사가 무너지고 난 후 다시 설계사무실을 작게 시작한 곳이 마린시티이고,
그 후 이후 서너번 사무실을 이전하며 키우고 줄이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돌아온 곳이 또한 마린시티이다.
다음(Daum)에 처음 칼럼(블로그 이전)을 만든 곳도 마린시티였다.
처음 마린시티를 계획하고 30년.
그 마린시티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계획되었던 그런 곳, 그런 땅이 아니었다.
아델리스, 포세이돈, 하이페리온, 트럼프 월드 등 초고층 호화 아파트와 주거용 오피스텔이 들어섰고
지상 72층 1631세대의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아이파크와
세계에서 2번째, 한국에서 제일 높은 초고층 아파트 위브 더 제니스의 지상 80층 1,788세대가 준공하게 되어
해운대 마린시티의 스카이라인은 엄청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부산이 가장 추웠던 날, 사무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과 낙지볶음으로 점심식사 후
혼자 꽁꽁 얼어가는 손을 불어가며 산책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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