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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퇴원 11일 후의 용두산 공원 산책 본문

靑魚回鄕(부산)

퇴원 11일 후의 용두산 공원 산책

SHADHA 2023. 5. 8. 09:00

 

그녀와 나는 나란히 광복동 거리를 지나 용두산 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기는 했으나 추운 줄도 몰랐다

광복동에서 용두산까지 오르는 계단은 194계단으로 한참이나 올라야 했다. (지금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
하지만 그녀와 단 둘이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마치 꿈꾸는 것만 같았다.
그 계단이 거의 다 끝나고 용두산 공원에 들어설 무렵,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광복동, 남포동의 화려한 불빛들이 같이 어우러져 정신마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향긋한 그녀의 입김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뜻하지 않은 그녀의 질문이 날아왔다.

...니는 우리 친구들 중 누구를 좋아하는데?
... 나는... 없다... 잘 모르고...
... 나는?
... 아니... 저기.. 아... 그러니까..
... 내가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 아니, 나도 사실은 네가 좋지만 이미 내 친구들이 널 좋아하니까...
... 난, 네가 좋다. 너희 친구들 중 한 사람 하고만 만난다면 너하고 만나고 싶다....

순간 갑자기 하늘은 돌고,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하며
용두산 공원이며, 남포동이며, 부산 남항이며, 영도까지
온 세상이 금별, 은별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 난 네가 좋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도 나지막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살며시 내미는 차가워진 손을 잡고
용두산 공원의 밤을 헤쳐 걷기 시작했다........... 2004년 블로그 땅의 회상 <사랑이 꽃피던 계단길의 추억>

 48년 전인 1974년 내 나이 20살 적에 첫사랑이었던 여인을 만나던 곳... 용두산공원이었다.
그 오래된 추억은 용두산공원에 오를 때마다 여전히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4월 26일, 모처럼 하늘이 푸른 봄날에 광복동으로 나갔다.
4월 15일, 백병원에서 퇴원하고 난 후, 11일이 지난 후였다.
1달간 입원으로 다리 근육에 힘이 빠져서 걷기가 다소 힘들 때이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걷기 시작할 때였다.
남포동역에 내려서 광복동 거리를 천천히 걸어서 용두산 공원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랐다.
청년이던 젊은 시절부터 최근까지 친구들과 아내와 자주 산책을 와서 추억이 너무도 많은 곳,.. 용두산공원
천천히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산책로를 걸어서 중앙성당 쪽으로 내려와서 부평시장으로 가서 30년 전,
지인이던 병원 이사장이 소개하여 같이 돼지국밥으로 먹고 간 이후, 남포동 산책을 나올 때마다 들리던 식당.
부평시장의 <밀양집>으로 가서 따로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