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동대구역 앞에서 본문

...너희들 무엇이 제일 먹고 싶나 ?
...짜장면요...
덤프트럭 짐칸에 실린 우리 일행은 따블백 하나씩 들고
시골 촌 병아리처럼 대구시내를 가로질러 동대구역 BOQ에 도착했다.
대구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받고 배치된 자대로 가기 위해,
훈련병의 딱지를 떼고 진짜 군인이 되러 가는 길목의 동대구역.
...부산아이들 손들어 봐라..
난 군기가 바싹든 표정으로 용감하게 손을 들었다.
...너거 내일 오후 8시까지 안동에 한놈도 빠짐없이 도착할 수 있겄나?
목청이 터지라 대답했다.
...예 !
그날 오후 따블백 울러 매고 부산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하룻밤을 집에서 보내게 되는 외박..그것은 행운이었다.
동대구역은 좋은 추억을 많이 간직한 역이다.
동대구역 광장으로 나서니 초가을인데도 그 더위가 엄청났다.
광장의 아스팔트 바닥이 녹아서 신발 자국이 날 정도로 눅진해져 있었다.
텐트를 쳐 놓고 음료수룰 파는 간이 휴게실 의자에 걸터앉았다가 마중 나온 대구의 N사장을 만났다.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나타났다.
만나자마자 그는 내 손을 덥썩 잡고 위로의 말부터 시작했다.
...나는 수백 명의 직원에다가 백억이 넘는 부도를 당했다.
가지고 있던 수십 채에 이르는 빌라들도 다 넘어가고 사는 집마저 넘어가서
자식들 집을 전전하고 살지만 내 나이가 이미 환갑을 넘겼는데, 용기를 잃지 않고 뛰지 않느냐?
우리는 기술자 출신이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가진 것을 다 잃었지만 서로 의지하고 도와서 또 시작해 보자!
목수로 시작하여 대구의 중견 건설회사 사장에 이른 자수성가형의 강한 사업가인 N사장의
목소리 끝에 더운 땀방울이 맺혀 흐르던 동대구 광장.
나의 주머니 속에는 설계비로 받은 6천만 원짜리 어음이 한 장 들어있었다.
그 어음을 현금화시켜주겠다는 연락을 듣고 기대를 갖고 올라왔지만 IMF외환사태 이후에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해 초가을 동대구역은 정말 더웠다.
<1999년 독백과 회상>
'독백과 회상 1999'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남에서의 추억 (0) | 2025.03.24 |
---|---|
동대구 호텔 커피숍에서 (2) | 2025.03.22 |
대구로의 망명 (1) | 2025.03.20 |
금호강, 그 강변을 걸으며 (0) | 2025.03.19 |
동학사 가는 길 (0) | 2025.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