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동대구 호텔 커피숍에서 본문

1,500원짜리 IMF 곰탕 한 그릇 비우고,
4,500원짜리 커피를 마신다.
두 사람이 번갈이 자리를 비우면서 커피 한 잔만 시킨다.
안 마실 수만 있다면 안 마시겠는데,
안 마시면 주차권에 도장을 찍을 수 없어서 마신다.
마시고 커피 값을 내나, 안 마시고 주차비를 내나,
매 한가지이니 마시는 것이 낫다.
그래서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마시고
한 사람은 호텔 밖,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만나자고 한 사람도,
만나러 온 사람도,
IMF위환 사태로 점심 한 끼, 커피 한 잔,
기분 좋게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도,
한 때 놀던 가락은 있어서
꼭 관광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한다.
들어설 때,
한쪽 손 번쩍 들어 반가움을 표시함도,
종업원에게 인사받는 폼도,
차를 시키는 매너도 세련되어
커피 한 잔만 시켜도 어색함이 없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마주 앉거나 곁에 다가앉아,
속이고, 속아 주고,
유혹하고, 유혹당해주고,
내숭 떨고, 위선 하고, 허풍 떨고,
구름 잡는 소리, 속 보이는 소리, 권태로운 하품소리.
결론도 없는 시간 죽이기.
호텔 창 밖, 가로수 나무 너머로 어두운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1999년 독백과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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