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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수원역 겨울 연가 본문

독백과 회상 1999

수원역 겨울 연가

SHADHA 2025. 3. 26. 09:00

 

 

2층 구름다리 건너편에서 열차에서 내린  한 무더기 인파들이 쏟아져 나왔다.

계단 중간 난간 가로등 아래에 서서 바라본다.

아무리 훑어봐도 보이지 않는다. 벌써 5번째 기차가 지나갔다.

열차에서 내려 구름다리를 건너온 사람들은 눈보라를 동반한 매서운 바람을 헤치고 뿔뿔이 흩어졌다.

뒤쳐져 걸어나오던 중년 남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려던 손 끝이 바르르 떨린다..... 춥다.

... 저기, 이게 서울에서 내려오는 마지막 전철입니까?

... 잘은 몰라도 한 대 정도는 더 있을 거요.

등을 돌려 서둘러 가는 그의 뒷모습 너머로 하얀 눈이 계속 내린다.

 

역 광장 길 건너 매산로에서 지하도를 건너와서 남자들 유혹을 해대던,

지하도 입구와 공중전화박스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여인들도 하나, 둘 씩 지하도를 다시 건너가고,

대합실에서 쫓겨난 노숙자, 신문 한 뭉치를 겨드랑이에 끼고, 여인들 따라 지하도로 사라졌다.

차갑도록 하얀 불빛 가로등 몇 개만이 자리에 남아 자리를 지키는 역 광장이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새벽 첫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하얀 눈만이 광장에 남아 쌓이겠다.

 

길 건너 매산로의 밤은 아직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에 비치는 내리는 눈으로 환하기만 하는데,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군밤장수의 카바이드 불빛만이 눈바람 속에 흐느적 거린다.

자판기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셨는데도 심장까지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머리에 내려앉은 눈이 녹아 얼굴쪽으로 타고 내리니 더 춥다.

손수건으로 닦아도 손수건만 찹찹하게 흠뻑 젖을 뿐이다.

 

기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는다.

눈을 피할 곳도 없고, 역 주차장에 세워놓은 승용차로 돌아가 있기도 멀다.

어쩌면 오늘 밤에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담배 한 대 피워문 채로 개찰구로 다가서니,

문 닫을 준비를 서두르는 늙은 역무원이 손을 후후 불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가 끝났습니까?

... 마지막 기차가 조금 전 군포를 지났으니 3분쯤 도착할 것입니다.

 

마지막 열차 승객들이 구름다리 위를 걷거나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개찰구 바깥 난간 가로등 아래 눈을 맞으며 그냥 서 있었는데.

..... 비어 가는 구름다리 끝에서 하얀 꽃 눈송이가 웃으며 오고 있었다.

 

 

<1999년 독백과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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