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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오정순 68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본문

줄의 운명

오정순 68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SHADHA 2004. 1. 30. 12:08


오 정 순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12/19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오늘 아침 세탁소 총각만큼만 생각해도 좋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 붙였던 글을 베끼려고 종이를 가져와보니 없어졌더라며 그 글을 다시 좀 볼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는 어찌나 공손하던지 마음을 애써 열 필요를 못느꼈다.
나는 급히 복사를 하려고 하니 글이 어디에 저장되었는지 금방 찾을 수가 없어 잠시 후에 엘리베이터에 붙여두겠다고 하였다.

며칠 뒤. 단골 세탁소가 이사를 하여 나는 그 총각의 외침인지 모르고 세탁물을 맡기려고 불렀다.
그 총각은 먼저번 글을 잘 가져갔다고 인사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독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얼굴이 붉어지며 "예"한다.
나는 세탁물과 같이 내 책 2권을 주며 참 좋은 독자를 만났다고 했다.
이틀후 그가 세탁물을 가져왔다.
얼마나 정갈하게 담아왔는지 호텔세탁물 받는 기분이었다.

"얼마지요?"
"바지 줄인 값만 받겠습니다.
드라이한 것은 그냥 해드리고 싶습니다. 책값을 드릴 수도 없고요."
그는 여전히 순한 젊은이로 얼굴을 붉히고 서 있다.

거창한 이슈를 걸고 글쓰지 않아도 된다.
이런 젊은이들이 읽고 희망을 가지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커나가기를 바라면서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좋겠다.
문학적 가치 운운하여 무어라 한다고 하면 그 말 들을 이유가 없다.
사람이 문제고 사람이 대상이고 사람을 위해 마음을 쏟는다면 사람이 보일 것이고 사람이 느껴질 것이고 사람이 가는 길을 알 것이다.
그들이 가는 길도 관심을 가진다면 잠시잠시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길 위에서 나는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언어를 듣게 될 것이다.
대변인도 되고 변호인도 되고 구호도 외쳐줄 것이다.

행복은 내 주위에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만큼 날아든다.
떨어져 버려지는 낙엽같은 것을 행복자루에 모아두는 것이 내 재주다.
남들은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다가 자루가 커져서야 부러워할 때도 있다.

나는 거창하지 않은 곳에 참 좋은 삶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챙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