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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12 시월 답신 Re:가을 편지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12 시월 답신 Re:가을 편지

SHADHA 2004. 2. 14. 12:22


푸른샘




시월 답신 Re:가을 편지

10/04







 
아스라님,

한가위의 둥근 달에 간절한 염원을 띄우고
돌아서 달빛 베인 창호에 님의 향기를 흠향하던
며칠의 휴식이 꿈처럼 끝나버렸습니다.

명절 선물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질 좋은 가루녹차 한 통,
유비가 어머니께 드리려고 품어갔던 차 항아리의 간곡함을...
다정다감한 두째 아들과 마주앉아 공감하며 마셨습니다.

아직 가을인 창밖은 차바퀴 아래 짖이겨지는 빗소리로,
저 절절한 파가니니의 바이얼린 협주곡으로 다가옵니다.
작년 이맘 때 적어둔 글, 가감없이 올립니다.
행복한 물 줄기 그침없는 가을 되시길 빌며...



<가을 여행 스켓치>

이제 여행은 생존에 필수적인 하나의 기본권이 되었다고 합니다. 가고픈 곳을 향해 시간과 여유를 모아서, 새로운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기대를 품으며 떠납니다. 여행은 함께 가는 이에 따라 後味는 다르겠지만, 각자가 짊어진 일상의 탁한 먼지를 씻어내고 낡아 헤진 곳을 기워서 쓸만한 삶으로 변화시킨다는 보수의 의미는 누구에게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긴 해외에서의 체류이거나 단 시간의 동네 한 바퀴를 도는 행보이거나 말입니다.


또 가을은 잘 익은 과일만이 아니라 햅쌀과 채소, 육고기와 생선까지도 모두 살져서 깊은 맛이 들게 하는 풍요의 계절입니다. 가벼운 가을 여행으로 택한 보성의 녹차밭과 득량만에서 잡히는 전어 회에 대한 기대로 부푼 가슴은 아직 단풍 들지 않은 나무들까지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강진을 지나 장흥으로 접어드는 길초에 내건 낡은 팻말에는 <관서별곡 카페>라고도 적혀 있었지만 주인만이 즐기는 남모르는 풍류였는지 한없이 고적했습니다.


장흥의 산세는 웅장하고 수려하면서도 유순한 그림자를 갈피에 지녀 사람의 마음을 깊숙이 잡아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왕처럼 위엄 있는 바위를 얹고 앉은 帝岩山과 김유신이 사랑했던 천관녀가 피신해 온 天冠山의 먼 스카이라인은 정한 곳 없는 나그네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제암산은 봄철 철쭉제로 유명한 곳이고, 천관산의 등성이는 가을 억새 밭으로 장관을 이루며, 등산로와 평행하여 길게 뻗은 해안선의 깊은 물빛을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곳입니다.


사계절 중 차를 음미하기에 가장 좋다는 늦가을을 대비해 좋은 차를 구하기로 작정하고 나선 길이어선지 아직 단풍 들지 않은 잡목들 안에서도 뚜렷이 검푸르게 부플어 우아하게 줄지어 서있는 녹차밭이 눈에 띄었습니다. 배수가 잘 되도록 자리 잡은 산비탈 따라 계단식으로 배치된 것이 마치 노천의 극장이나 경기장에 잘 차려입고 나앉은 우아한 귀족들의 자세였습니다. 11월엔 하얀 차꽃으로 절경이라는 장흥과 보성의 경계쯤에 선 茶香閣에 올라 멀리 놓인 저수지의 물빛을 보니 엷게 우려낸 찻빛 그대로였습니다.


연변에 숱하게 늘어선 녹차시음장을 뒤로하며 달리니 왠지 모를 한기와 허전함에 가슴이 시려옵니다. 그 옛날 초의와 다산은 차 한잔을 마주하며 차색과 차맛과 차향을 즐기고 깊은 사색을 담론으로 나누었다더니, 선인들의 풍류는 간 곳 없고 한갓 흉내로 차를 사고 파는 것이 서글픕니다. 그래도 따스한 찻종을 두 손으로 싸안고 본연의 마음을 담아, 혀와 볼과 콧속에 여진이 감도는 味香을 즐기며 범해선사의 '부원운'이라는 茶詩를 옮겨 봅니다.


<반나절이 되서야 사람이 찾아들어
차를 마신 끝에 외로운 마음 털어놓는다
살아 온 일들을 자상하게 묻는데
다만 푸른 물, 흰 구름이 깊은 것만을 알았노라>


보성군 내에 미처 들어가기 전에 우측으로 율촌 해수욕장(녹차탕) 19킬로라는 갈색 팻말이 보입니다. 회천읍 율촌리는 전에는 율포 해수욕장으로 유명하여,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가본 유일한 해수욕장이었습니다. 해마다 익사 사고가 있는 곳이라 더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지금도 해안선 따라 좁은 모래사장과 바짝 다가선 송림 숲이 급경사진 바다 물빛의 깊이를 가늠케 합니다. 그 옛날의 기억은 간 곳 없어도 수십 년 된 해송의 푸른 가지는 하늘 높이 청정하기만 하여 맑은 바람을 이고 사는 선비의 자세로 가볍게 살랑거립니다.


솔밭 숲 곁으로 난 찻길을 따라 방파제까지 걸었습니다. 주말이라 낚시 나온 노부부는 꽤 큰 운저리들과 전어 그리고 장어를 몇 마리씩 낚았더군요. 해안 가까운데도 버릇없이 물위로 튀어 올라 하얀 은색 비늘과 얇고 유연한 허리를 과시하는 전어들의 유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달빛 흐르는 바닷가에서 보리 숭어들이 겁도 없이 높이 뛰어오르는 것은 보았지만, 햇빛 아래서 팔짝이는 놈들을 보는 것도 경이로웠습니다.  숲 사이에 자리잡은 횟집들마다 전어 전용의 수족관이 있어서 지하철 표만한 크기의 것들이 작은 민물고기들처럼 떼지어 좌로 우로 이동하는 모습을 진기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전어회는 득량만에서 갖 건진 싱싱한 것들을 뼈째 떠서 연한 미나리와 양파 채 그리고 오이 등과 함께 초를 듬뿍 친 고추장에 통깨를 뿌려가며 무친 것이 맛있습니다. 회무침 한 가지에 밥을 비벼서 맑은 조개국 한 사발과 먹고 나니 그 새콤하고 매운 맛이 나른한 정신까지 상쾌하게 씻어주는 듯 했습니다. 제철이라고 찾아 온 원거리 손님들은 전어 구이나 회에 입맛을 돋구고 바로 바다 곁에 있는 녹차탕에서 여독을 풉니다.


녹차탕은 바닷가에 바짝 붙어 있어서 푸른 염수를 그대로 끌어올린 탓에 염도가 2%정도 되는 것에 녹차 잎과 줄기를 담가 우린 원두 커피 빛깔의 탕입니다. 뜨거운 열기로 풍기는 녹차의 탄닌향은 니코친 타르의 냄새와 비슷하지만, 그 물에 담근 후의 피부가 너무나 부드럽고 매끄럽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주변의 경관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삼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정면으로는 멀리 고흥, 녹동 반도의 끝자락이 아련한데, 방파제 안으로 돌아오는 작은 고깃배들과 유람선은 승전의 당당함으로 가득 찬 유유한 군함을 연상케 합니다.


좌측으로 내다보이는 바깥은 송림의 끝가지들과 맑은 새순들이 이루는 연록의 환희를 즐길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볼 수도 있다는 주의 사항에도 불구하고 창틀에 올라앉은 풍만한 세 여인은 소나무 가지를 배경으로 내려앉은 三鶴을 연상케 하니 그 경박함을 탓하지 말고 즐길 일입니다. 우측으로 보이는 바깥은 마을을 안고 있는 낮은 산이 석양에 가까워지자 보랏빛으로 우수에 젖어 있습니다. 십자가와 외곽선을 하얗게 돋을 칠한 교회 건물이 자꾸만 눈에 띄며 내 영혼의 안식을 약속해 주는 듯합니다.


기다란 냉탕의 차가움을 알몸으로 즐기며 하는 수영은 정말 다시없는 호사입니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싶지 않은 순간의 행복이 온몸을 휘감고 가슴에 일렁입니다. 철없는 가을 잠자리들이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며 다가왔다 흩어지는 것이 동화 속 나라에 온 듯 꿈 꾸게 합니다. 월출산에서는 하얀 꼬리를 남기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지리산에서는 대보름의 둥근 달 아래 흩어지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저 멀리 금강산의 노천탕에서는 그 우아한 비로봉과 만물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욕을 즐겼지만 이만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산 속에서는 월하 선녀처럼 하강하는 환상이 있었다면 이곳 바닷가에는 못내 슬픈 인어들의 환영이 유혹합니다. 바닷물은 은실을 넣어 짠 이브닝 드레스처럼 곱고 잔물결로 반짝입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정물의 바다입니다. 돌아오는 길로 택한 장흥 군민회관 사거리까지 바다는 지방 해안도롤 따라오며 좁은 백사장과 나무 벤치들로 외로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햇살이 사위며 떨어뜨린 오렌지와 보라빛의 노을은 방파제 위로 길게 누워 요염한 자태를 섞으며 나를 배웅합니다.


해으름 들판엔 여기 저기 낮게 깔리는 연기는 저녁 안개처럼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늘 끝자락으로 향합니다. 탈곡 후 볏짚 태우는 훈향이 낙엽을 긁어 태우던 아늑한 옛날을 생각나게 합니다. 어두움이 잦아들며 어서 돌아가고 싶은 집, 어머니 그리고 고향이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낮게 그러나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골목 안에서 부르는 내 이름을 기억해 냅니다. 이제는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아무런 칭호 없는 兒名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짧고 선명한 신호였습니다. 아, 이제는 들을 길 없는 그 무선의 호출음을 들판의 연무 속에 남겨둔 마음만이 외롭게 기다릴 것입니다.


'00.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