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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50 나는 늘 저 먼 시간이 그리웠다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50 나는 늘 저 먼 시간이 그리웠다

SHADHA 2004. 2. 14. 17:33


푸른샘




<나는 늘 저 먼 시간이 그리웠다...>

10/02






 


<나는 늘 저 먼 시간이 그리웠다...>


다시 숙소를 찾다보니 리베라호텔 뒤켠에 있는<한옥생활체험관>을 쉽게 찾았다. 코너의 공터를 끼고 도니 주차장은 작지만 아담한 입구를 가진 솟을대문의 한옥집이 과꽃과 봉숭아꽃을 피운 뜨락을 내보인 채 열려있다. 바로 입구에 큰 응접실 같은 多慶樓, 뒤안으로 ㄷ자 배치의 사랑채 세화관이 있고 작은 소로를 들어서면 부엌과 찬방을 가진 안채 端影院이 있다. 우리가 든 사랑채의 별실은 화장실이 따로 달려 있어서 7만원에 묵게되었다.


방은 두 평이 채 못될 듯 작지만 방안 等物들은 오밀조밀하다. 구석의 사방 탁자와 냉장고 그리고 書案과 머릿경대가 윗목에 나란히 놓여있고 개켜 놓인 이불 두 채는 하얀 목면 홋청의 요와 하얀 누비이불에 작은 꽃수가 앙증맞게 수놓인 것이다. 사방 탁자 위의 옹기 梅甁엔 마른 맹감나무 가지가 하나 운치있게 꽂혀있다. 겨울 풍경을 그린 산수화 한 점이 눈높이 만큼에 낮게 걸려있다. 에어컨과 욕실의 냉온수, 은은하게 군불이 들어오는 온돌 바닥은 심야 전기를 이용한 것이라 한다. 한옥이라지만 문틈으로 디미는 웃풍과 싸우고 뜨거운 방구들과 싸우는 체험은 아니다. 방향제가 꽂힌 220볼트 코드가 있고 커다란 한지 부채와 신문이 사방탁자에 비치되어 있다. 옷걸이용 횟대가 있고 경대서랍엔 참빗도 있다. 에프 킬러와 물파스도 있고 외출할 때 쓰도록 문단속용 잉어모양의 경첩 쇳대도 준비되어 있다.


뒤란으로 난 밀창을 여니 뒷담에 올라앉은 늙은 호박 한 덩이가 딱 수박만 하다. 길 건너편에는 수형이 대칭으로 균형 잡힌 소나무 두 그루와 차를 주차해둔 리베라호텔의 벽면 글씨가 선명하다. 오늘과 옛날이 공존하는 곳, 전주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스스로 달라져야한다고 외치고 있다.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처처에 그런 노력이 넘쳐났다. 특히 이곳에서 만나게 된 전주 여자의 조신하고 단정한 몸짓에, 음전한 솜씨의 공예품과 말씨에, 그리고 섬세하고 깔끔한 음식 맛에 반하게 되었다. 전주 출신 하얀새가 하얀 침실을 고집하며 다양한 조리법과 테이블 셋팅과 금속 공예에, 꽃꽂이에 그리 격 높게 사는 근원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바로 곁에 있는 <전주 전통술 박물관>에 갔다. 입구에서부터 넘치는 누룩의 냄새로 시큼하고 들쩍지근하면서도 어질하다. 그러나 명절의 화기애애함과 덕담 사이엔 언제나 술 한 잔의 여유가 그리운 법이다. 전시실 앞마당의 큰 독들과 술잔을 띄우던 안압지를 본뜬 대리석 모형이 색다르다. 내가 본 중 가장 큰 木魚가 걸린 전시관에 들어서니 누룩이 찐 밥과 만나서 숙성되는 방 앞에는 <醉石>이라는 명필의 탁본이 걸려있다. 그것만으로도 족히 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만들어진 술이 보관되는 방 그리고 막걸리를 증류하여 청주를 만드는 재현회, 시음 등을 할 수 있었다. 사십 도의 증류주는 금방 불 날 듯하다가 금새 깨이는 술이었다. 이곳은 집에서 직접 만드는 家釀酒문화를 보급하고 우리 술 문화를 선도하며 청소년에게 <鄕飮酒禮>의 예절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술 또한 음식이며 차처럼 예를 갖추고 친분을 도타히 하는 좋은 기회 음식이었는데...


저녁 먹을 곳을 찾아서 <전통문화센타>까지 걷기로 했다. 리베라호텔이 있는 앞길은 기린로라 하는데 <梧木臺> 앞에서 한옥마을의 중심도로인 태조로와 만나있다. 십분 거리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저무는 낯 선 도시의 시간을 음미한다. 숲과 낡은 기와 지붕들이 오래된 술처럼 곰삭은 향기를 풍긴다. 문화 센터 마당에는 타이완에서 온 중국인들이 한 차 부려져 있다. 나름대로 부티를 내며 조용조용히 움직인다. 전통 혼례식장인 <화명원>에서 혼례복을 입어 보기도 하고 <경업당>에서 다도를 시연받기도 한다. 마당에 벌여진 전통 놀이 중 널뛰기와 투호나 굴렁쇠를 굴리기도 한다.


승암산(치명자산)과 남고산을 배경으로 수양버드나무 휘늘어진 전주천 물은 맑고 깊다. 잘 가꾸어진 물가에 백로가 노닐고 물 속엔 작은 고기들로 가득하다. 한벽교를 건너면 <한벽당>이라는 호남 풍류가객들의 명승지인 정자가 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계단식 분수가 아름다운 한벽루 아래 오목거리탕집들은 메기나 쏘가리로 매운탕을 끓여 파는 집이 즐비하다. <한벽루>에 들어가 산채 비빔밥과 추어탕으로 저녁을 먹다. 낮에 먹던 비빔밥과는 너무 다른 가짓수와 섬세한 맛, 그리고 손 접대의 다소곳함에 마음이 넉넉하게 된다. 이곳에서야 천천히 즐기며 밥을 먹는 즐거움을 찾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육교 겸 <오목대> 오르는 길이 있다. 오목대는 이성계가 남원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승전하여 돌아가던 중 자축하며 머문 곳으로 고종의 친필 비석이 있는 <李木臺>와 함께 산정에 자리잡고 있다. 외진 곳이라선지 촬영용 조명등으로 환하게 밝혀진 불빛 아래 날것들이 극성인 오목대에 올라 잠시 전주 시가지의 야경을 내려다본다. 이씨조선의 발원이 된 곳, 조선의 뿌리와 근본을 느끼게 하는 곳, 밤바람이 선선하다.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한가위 추석을 맞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낯섬이 나를 잠시 외롭게 한다. 어느 한 순간, 한 장소의 존재가 말없이 일점 흔적도 없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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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저 먼 시간이 그리웠다”
“내가 살았던 전주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경기전의 큰 나무들과 오래된 기둥들은 나에게 시간을 분초 단위가 아니라 백년 천년의 단위로 느끼게 했다. 그 나무들 아래서 나는 늘 저 먼 시간이 그리웠다.”
작가 최명희는 생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그 먼 시간대에 대한 그리움, 근원에 대한 천착으로 씌어진 작품이 『혼불』이다.


<못났으나 잘났으나, 이 나를 있게 한, 피 한 점, 살 한 점에 수백 년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닿고 싶은 그리움. 설령 그것이 비록 채송화씨 반 토막 만한 인자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기어이 한 번 가 닿아 보았으면 싶은 안타까운 절실함.>
매안 이씨 종가집의 종손인 강모의 독백이다. 그렇게 ‘나’를 있게 한 ‘세보(世譜)의 사다리’에 작가는 끌렸다.


작품 속에서 심진학 선생은 학생들에게 “나로부터 역사를 엮어 보라”며 “까마득한 고조선의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몇 천 년을 편년체로 지루하게 엮어 내려오는 역사는, 나한테까지 당도하기도 전에 기진맥진 지치고, 외우기 너무 멀어 오다가 길을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반면 <“내가 누구인가.” 정말 궁금하여 아버지, 아버지가 살던 땅,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살던 시대, 증조부, 고조부, 선세(先世) 옷깃을 찾아 오르고 오르면서 드디어 단군 할아버지에 도달하는 길은 절실하고도 구체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나는 아주 어려서 동화같이 소박한 의문을 가진 까닭에, 자라서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심진학 선생의 말은 작가에게도 그대로 해당될 터.


‘나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동화같이 소박한 의문이 『혼불』을 낳은 힘일 것이다.
서도역에서 <치마폭을 펼쳐놓은 것 같은 논을 가르며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점잖은 밥 한 상 천천히 다 먹을 만한 동안> 걸으면 닿는 곳, 남원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최씨 종가집이 있는 이 곳 일대는 온통 『혼불』의 무대다.


노적봉이며 벼슬봉이 어깨를 잇대고 마을과 들녘을 감싸안고 있는 풍경도 바라다 보인다.


2003.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