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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60 폐허에 오래 서있노라면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60 폐허에 오래 서있노라면

SHADHA 2004. 2. 14. 17:51


푸른샘




폐허에 오래 서있노라면...

01/02




0102




손대지 마라
          -쉴리 프리돔


이 마편초 꽃이 시든 꽃병은 부채가 닿아서 금이 간 것
살짝 스쳤을 뿐이겠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
하지만
가벼운 생채기는 하루하루 수정을 좀먹어 들어
보이지는 않으나 어김없는 발걸음으로 차근차근 그 둘레를 돌아갔다
맑은 물은 방울방울 새어나오고 꽃들의 물기는 말라들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손대지 마라! 금이 갔으니
고임받는 손도
때로 이런 것
남의 맘을 스쳐 상처를 준다 그러면 마음은 절로 금이 가
사랑의 꽃은 횡사를 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온전하나
마음은 잘고도 깊은 상처가
자라고 흐느낌을 느끼나니
금이 갔으니 손대지 마라


***

폐허에 오래 서있노라면
신기루처럼 나타난 한 줄기 눈부심을 볼 수 있다.
햇살이 맴도는 듯 강렬하고 현기증 나는 순간
무책임한 환상은 살짝 할퀴듯 가슴을 스친다.

그런 차이다.
달리던 길에서 쭈욱 후진하여
스스로 유폐의 세계로 걸어가는 이에겐
괴로울 권리와 즐거울 의무가 있음이다.

푸르스름한 어둠의 시간 속으로 잠수하며
세상으로 향하는 모든 촉수를 접어버린 말미잘처럼
삶의 온갖 부박한 티끌을 불어내 버린다.

온몸의 습기를 비워 내버린 후,
恐慌상태의 마른 화병 속을 꽉 채워줄 사랑을
불가사리 모양의 내 왼손은 기다린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새벽,
가파르지도 편평하지도 않은 길,
급하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걸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대,

그리고
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은 사랑.
아직
강은 깊고 깊은만큼 고요하다.



2004.1.2

Shadha님과 땅의 식구들 모두에게
새해엔 소원 성취하시길 빕니다.

꿈은 실패할 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깨지는 것이라지요?

모든 문제엔 해답이 있듯이...
모든 답에는 상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