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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평사리 황금들녘의 가을 본문

가야의 땅(경남)

평사리 황금들녘의 가을

SHADHA 2006. 10. 8. 10:16

 

 

 

평사리 황금들녘의 가을
하동 평사리 < 土地 > 1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
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 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렇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운 벼 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 놓은 새 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후우이이 --- 요놈의 새 떼들아!"

극성스럽게 새를 쫓던 할망구는
와삭와삭 풀발이 선 출입옷으로 갈아 입고,
타작 마당에서 굿을 보고 있을 것이다.
추석은 마을의 남녀 노유,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새들,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까지 포식의 날인가 보다.
빠른 장단의 꽹과리 소리,느린 장단의 둔중한 여음으로
울려 퍼지는 징소리는 타작마당과 거리가 먼
최 참판 댁 사랑에서는 흐느낌같이 슬프게 들려온다.
농부들은 지금 꽃 달린 고깔을 흔들면서 신명을 내고,
괴롭고 한스러운 일상을 잊으며 굿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최 참판 댁에서 섭섭잖게 전곡(錢穀)이 나갔고,
풍년에는 끼치지 못했으나 실한 평작임엔 틀림이 없을 것인즉,
모처럼 허리끈을 풀어 놓고 쌀밥에 식구들은 배를 두드렸을테니
하루의 근심은 잊을 만했을 것이다.
이 날은 수수개비를 꺾어도 아이들은 매를 맞지 않는다.
여러 달 만에 소증 풀었다고 느긋해하던
늙은이들은 뒷간 풀입이 잦아 진다.
힘 좋은 젊은이들은 벌써 읍내에 가고 없었다.
황소 한 마리 끌고 돌아오는 꿈을 꾸며
읍내 씨름판에 몰려간 것이다.
최 참판 댁 사랑은 무인지경(無人之境)처럼 적막하다.
햇빛은 맑게 뜰을 비춰 주는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 버렸을까?
새로 바른 방문 장지가 낯설다.


...소설 <土地>의 발단부 중에서....







"후우이이 --- 요놈의 새 떼들아!"

극성스럽게 새를 쫓던 할망구는
와삭와삭 풀발이 선 출입옷으로 갈아 입고,
타작 마당에서 굿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 후 110년의 세월이 흐른 2006년 한가위를 앞두고
가을빛 섬진강변을 따라 오르다가
고개가 무거운 벼 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
평사리 황금 들녘 그 곳에 머물러 섰다.

박경리의 장편소설 <土地>를 다 읽지는 못했으나
한가위로 시작하는 전반부의 평사리의 가을 풍경들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고 가을여행으로 유혹했다.

섬진강변에서부터 펼쳐지는 황금 들녘의 벼이삭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펼쳐져 있고,
각양각색의 아름답고 다양한 허수아비들이 지천에 깔렸다.
극성스럽게 새를 쫓던 할망구의 형상도 거기에 있다.

보름달 아래 펼쳐질
굿판인지, 강강술래인지를 준비하고 있는
평사리로 오르는 길목의 타작마당을 지나
활짝 핀 코스모스길 사이로
<土地>의 땅으로 들어선다.



















악양면 평사리 마을 가을풍경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土地)





섬진강과 평사리 황금벌판 항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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