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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범어사의 봄 본문
범어사의 봄
발목 묶여있는 날의 여유
하늘이 푸르러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데,
언제쯤 어떤 약속의 연락이 올지 모르는 날이여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떠나고 보자며 북으로 북으로 달려
부산의 북쪽 경계에 이르렀을 때,
그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다시 부산으로 방향을 돌려 범어사로 올랐다.
기다려야 하는 날들이 많은 때이다.
1982년 한 여름밤,
범어사에 딸린 작은 암자에
고시공부하는 친구하나가 칩거하고 있어
친구들과 고기와 소주를 사들고
달빛도 없는 그믐밤에 밝힐 불빛도 없이
범어사옆 바위돌 계곡을 오르기 시작했었다.
바위틈새에 발도 빠지고 몸도 빠지면서
빗물처럼 땀을 흘리며 낄낄거리며 그 돌산을 올랐다.
이윽고 암자에 올라 친구를 놀라게 하고
암자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에 모두 훌러덩 벗고 들어가
차디 찬 개울물에 목욕하던 날 보았던,
그 하늘의 별이 문득 그리워졌었다.
그 암자에서 공부하던 그 친구는 열심히 살다가
몇해전 몹쓸병으로 저 하늘에 별이 되었다.
1998년 늦여름
막고 막고 막아도 새는 제방뚝의 물길처럼
하나 둘씩 무너져가는 회사들을 지키려다
지칠만큼 지친 어느날,
계열회사를 맡았던 친구와 둘이 그 계곡 바위위에 앉았다.
깊은 계곡을 타고 오르는 바람이
그해 여름밤 계곡물처럼 시원하게 느껴졌었다.
우리는 1982년 한 여름밤
그 바위돌 계곡을 같이 올랐던 오랜친구였다.
...너라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어,
...어디서부터 잘못 된거지 ?
...네가 정이 많아 모질지 못해서 그래,
하지만 너의 잘못이 아냐,
나라 전체가 다 흔들리고 있으니까...
2007년 봄,
그 친구가 계기를 만들어 온 해외 프로젝트,
사업분석과 기본계획서를 같이 만들고
외국으로 건너갔던 그 프로젝트의 결과를 받아오기 위해
서울로 간 그 친구의 연락을
그 범어사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범어사는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가는 반경속에
우리들의 오랜 우정과 함께
변함없는 모습으로 존재되고 공존하고 있었다.
음악 : Astor Piazzolla < Preparen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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