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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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그리고 아내와 딸
유엔공원, 시립박물관, 문화회관 뜰에서....
나에게 올해 가을은 무척 짧았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을 보고, 다시 본 가을은 이미 쌀쌀해지고 있었다.
하여,
지난 추석이 오기 전에 서울의 작은 딸아이가 새로 수입된 브랜드라며 옷을 몇 벌 보내주어
가을이 시작되면 입을꺼라며 아내앞에서 패션쇼까지 벌렸었는데,
그 옷들을 제대로 한번 입어 볼 기회도 없이 가을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저물어가는 가을이 아쉬워서 가을 향기 맡으러 산책길에 나섰다.
유엔공원과 시립박물관, 문화회관 뜰을 거닐며 만추를 즐긴다.
나는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을 때,
아내에게 제일 먼저 물은 것이 병원비였다.
대형 병원에다가 응급실로 들어가서 중환자실과 심장 집중 치료실에도 오래 머물러서
병원비가 많이 나왔을 것이라는 걱정때문이였다.
허지만 아내의 대답은 아주 흔쾌하게 보험회사 보험료로 다 지불했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병원에 진료받으러 가는 나에게 아내는 보험회사에 추가로 제출해야 된다며
퇴원 전날 찍은 심전도 촬영의 확인서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보험처리가 다 된 줄 알았다.
그러던 지난 토요일.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편함에 꼽힌 작은딸아이의 카드명세서가 우연히 눈이 띄었다.
그리고 그 명세서에는 내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지블된 500만원이 훨씬 넘는 병원비가 있었다.
일시불로 지불완료된 작은 딸아이의 카드명세서.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상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보험회사에 보험계약이 되어 있으나 나의 심장병 전력때문에 각종 검사료는 지불되나
입원비등은 보험회사에서 지불되지 않아 병원비를 걱정할 때
작은 딸아이가 5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냈다는 것이다.
아빠가 알면 걱정할 것이라며 아내와 말을 맞추어서 내가 알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아내와 난 집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처가집으로 장모님 생신에 가는 길.
가는 길목에 낙엽이 곱게 쌓인 길을 아내와 팔짱을 끼고 걷고
동천강을 따라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강변에 도착해서 작은 딸에게 전화를 했다.
....딸, 밥은 먹었니 ? 알고보니 내 병원비 네가 냈더라. 적지도 않은 금액이던데....
....아빠, 어떻게 알았어? 엄마한테 이야기 하지 말라고 헀는데...
....우리 딸. 고맙다. 우리 딸이 아빠 목숨을 구해줬네...
....아빠. 그건 신경쓰지 말고 아빠 건강회복이나 빨리 해....
전화를 바꾸어 달라는 아내에게 전화기를 넘겨주고 강변을 걸을 때,
아내와 작은 딸이 주고 받는 정겨움이 하나 가득 느껴졌다.
늘, 아기같기만 하던 딸이 어느새 이렇게 커버렸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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