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뉴질랜드로 가는 큰 딸 본문
남 태평양
멜라네시아 남쪽 끝.
오스트레일리아 남동쪽 1600 km.
뉴질랜드.
불의 신 마 누이.
하늘과 땅을 반으로 갈라놓고,
거센 밧줄을 던져
태양을 매어 달고는,
날마다
신생의 땅을 덮이려 했다는
마오리의 전설.
기인
흰 눈의 나라.
인류의 마지막 상륙지.
폴리네시아,
어떤 섬에서 정처 없이 왔던
어부 쿠페의 땅.
네덜란드 탐험가 태즈만의 노바젤란드.
새 바다의 나라.
남극해로 가는 길목.
케르마데크 해구 곁에 선
1840년 영국 자치령.
쿡 해협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큰 섬 중
북쪽 섬.
새로운 꿈을 꾸러 온 자가
제일 먼저 도착한
투명한 땅
오클랜드.
....................1995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도착하여
오클랜드
다만,
아주 멀리서 생각할 수 있는 정도로만
허용된
땅이 있습니다.
아득하게 그어진
땅 금.
숲으로 덮은 하늘.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이 되고,
위가 아래며
아래가 위가 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초록 길.
내겐
항상 느낄 수는 있어도
들어설 수 없는 원시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이래도
더 가까이 다가서려 하면,
닿기도 전에
그만치 더 멀리 달아나는
땅 끝 같은...
들판에 핀
미나리아 제비 풀과
푹신한 건조 풀더미 곁.
양 떼.
멀어야 하고
늘 낯설어야 하는
그 사람은
타우포 가는 길입니다.
...... 1995년 오클랜드에서 타우포 호수로 가는 길에
타우포 가는 길
저 쪽,
그 너머 바깥쪽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했다.
지난 여름내
킨노취 목초지에서 땀 흘리고 휴가 나온
두 명의 젊은 목동과
웰링턴에서 온
수녀의 나직한 미소.
호수에서 일을 마친 가죽옷의 늙은 어부들이..
해가 지자,
하나, 둘.
밤하늘 별처럼 모여드는
작은 카페.
질 좋은 고기와 그린 빈스.
감자요리와 짙은 홍차.
부딪히는 유리 잔속에서 이는 맥주 거품.
그칠 줄 모르는 웃음 사이.
한편 선반에 기대어 섰던 자가
시작한 기타 연주.
흥얼대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사는,
아름답게 사는 이야기가,
창밖으로 흘러
타우포 밤하늘로 퍼질 때,
사랑.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는 거리에서
조금은
타락된 삶을 살던 자의
견디기 힘든 나락.
아!
명백해진 행복.
..............1995년 타우포의 밤에
타우포
나는 27년 전인 1995년에 뉴질랜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북섬의 오클랜드와 해밀턴 외곽 따라서 , 타우포 호수를 둘러보고 뉴질랜드는 공기 맑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7년 후인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 아내와 함께 큰 딸과 사위, 손자, 손녀들과 즐겁게 점심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하여 커피숍에 앉아서 대화를 할 때, 문득 큰 딸이 말을 꺼냈다.
....우리 뉴질랜드로 이민 갈까 하는데 엄마, 아빠 생각은 어때 ?
2019년도에도 한번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또 뉴질랜드 이야기가 나왔다.
.... 너희가 좋다면 그렇게 해! 하고 아내와 나는 쿨하게 말하였다.
.... 부모는 누구나 자식들이 잘 되고 행복하게 살면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 하고 아내와 나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에게는 심성이 착한 큰 딸과 아들 같은 작은 딸을 두고 있고, 큰 딸 부부는 부산에 살면서 1남 2녀를 두고
맞벌이 부부로 살면서 재작년에 30평대 아파트도 사고 나름대로 열심히 잘 살고 있었다.
서울 대기업에 취직한 작은 딸은 벌써 15년째 서울에 살고 있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고 있다.
큰 딸이 고등학교 다니던 3학년 때, 야간 학습을 하고 늦게 마칠 때, 내가 차를 몰고 학교 앞에 가서
큰 딸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큰 딸 친구를 매일 태워다 주었다.
큰 딸의 그 친구가 10여 년 전에 결혼을 하고 뉴질랜드로 가서 자리를 잡고 영주권을 얻어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수시로 큰 딸에게 뉴질랜드로 넘어오라고 제의를 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지금 건축과 인테리어를 같이 하는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사위에게 좋은 제안을 하며
뉴질랜드에서 같이 일을 하자며 지속적으로 설득을 해왔다고 한다.
고민을 하던 큰 딸 부부는 뉴질랜드로 가기로 결정하고 사위는 6월 중에 먼저 넘어가고, 큰 딸은 아파트 매매가
이루어지는 대로 바로 따라가기로 했다고 한다.
결정을 한 가장 큰 이유는 3명의 손주들이 교육 문제라고 했다.
뉴질랜드를 갔다 왔던 나로서는 뉴질랜드가 환경과 교육, 복지가 잘되어 있는 나라라는 것을 잘 안다.
딸과, 사위, 손자, 손녀들이 뉴질랜드에 가서 잘 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손주들 교육이 끝나는 대로 바로 돌아오겠다는 큰 딸과 사위의 말.....
사업을 두 번 실패하고 재산과 건강을 잃었지만 무엇에도 부럽지 않게 살아온 이유는 두 딸들이 지극한 효녀였고
가족들 모두가 서로 위해 주며 같이 자주 여행도 하며 화목하게 살았고 사위 또한 착하고 성실한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을 없지만 부산에 사는 큰 딸과 사위, 그리고 작은 딸이 항상 든든하게 지켜주는 기둥 같은 존재여서
늘 부유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그 큰 딸이 뉴질랜드로 떠난다고 한다... 부모로서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함이 항상 미안했었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말리지도 못했다.....
마음 한편에 남는 걱정은 내가 심장병으로 기저질환을 앓고 있어서 만에 하나 나의 건강에 급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큰 딸과 사위도 없이 아내 혼자서 어려움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열심히 더 건강 관리하고 운동하여 큰 딸과 사위,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큰 딸이 뉴질랜드에 안착을 하면 손자, 손녀들을 보러 아내와 뉴질랜드 여행을 28~9년 만에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큰 딸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다고 한다.
....... 아무래도 아무래도 손자, 손녀들을 오랫동안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온통 다 비어버리는 듯
허전하기만 하다.......
1995년 뉴질랜드 타우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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