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이기대 하늘과 바다와 산 본문
하얀 골목길을 돌아서면
푸른 바다가,
또 다른 골목을 돌아서면
푸른 바다가 보이는
까뮈의 연안 알제리 해안도시처럼,
해송 숲을 돌아보면
푸른 바다가,
또 다른 솔 숲을 돌아서면
야망이 부재중인 사람의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이기대.
그래서 나는.
알제리의 지중해 연안과 이기대를 사랑한다.
1. 순결
산 하나
동해바다에 빠졌다.
산 하나
푸른 하늘에 빠졌다.
솔 숲 가득한 산 하나.
산과
바다와 하늘이
서로 빈정거림도 없이,
나무람도,
의심함도 없이 제자리를 지키어,
산 오르며 보는 하늘,
내리며 보는 바다.
해풍으로 목청을 틔운 새들의 노래,
이 틈새,
저 틈새로
잘 어우러지게 핀 해바라기.
속 마음 다 털어내어
소유욕 0 이 되는 날까지,
산과 하늘과 바다의
순수한 숨결 곁에 머무르며,
슬픈 전설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이기대.
2. 열정
아 ! 비열한 짓
숲 사이로 숨 죽이고 숨어서
보아서는 안될 광경들을 훔쳐본다.
어느 해 질 무렵에
서쪽에서 몰래 다가온 하늘의 금빛 햇살이
솔 숲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어
연분홍 들꽃에게 희롱 짓.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없으면서도,
금세 떠나갈 것이면서도,
야생 들꽃의 순결을 유린해도 아름다운,
여기저기
극적인 흥분 상태로
악! 악
소리 지르며 오르가슴에 이르는 숲.
산기슭아래 작은 계곡들은
또 다른 하늘과 바다가
은밀히 만나서 밀회를 즐기는 사랑 호텔.
밤이 깊어지면 즐수록
점 점 더 하나로 결합되어 가서 격정 속에 빠져들고
게세지는 하얀 파도.
견딜 수 없다는 듯 꿈틀이며 숲을 쥐어 뜯는 바다 손길.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 내지르는 하늘.
해 질 무렵의 이기대는
열정을 잃은 의기소침한 사람에게
당혹감과 함께
이제 살아 움직이라고 한다.
3. 소망
굳이
살아야 한다면,
그래서
다시 살아야 한다면,
죽어야 할 날을
손가락으로 헤아리지 말자.
죽어야 할 날을
안타까워하거나 두려워하지도 말자.
그렇게 내딛는 한 발,
내딛는 한 발마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고,
숭고한 바람과 징조가 만나고,
삶과 자연과 내가 만나니,
순간순간
만족!
굳이
살아야 한다면,
그래서
다시 살아야 한다면,
죽어야 할 날을
손가락으로 헤아리지 말자.
죽어야 할 날을
욕심내거나 끌어가려 하지도 말자.
그저
하늘과 바다와 산이
제자리에서 초연히 어울려
좋은 숲을 이루는
이기대처럼만 살게 해달라고,
소망하고.....
.... 1999년 <이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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