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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고백과 회상>꿈꾸는 者의 겨울 回想 본문

告白과 回想

<고백과 회상>꿈꾸는 者의 겨울 回想

SHADHA 2004. 1. 24. 23:34


shadha의 고백과 회상
2003



꿈꾸는 者의 겨울 回想







Ⅰ.

바람이 아주 차가운 겨울날이거나 어려운 일들을 기분 좋게 처리한 다음이거나

어렵게 설계비를 수금하여 회사 통장에다 기분 좋게 입금을 시키고 난 후에는

나는 습관처럼 바닷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혼자 푸른빛의 해운대로 달려왔다.


넓은 통유리 너머 야외 수영장과 야자수 나무 사이로 눈부시도록

푸른 동해바다의 南端 끝.

낯선 나라 여행길에서 만나는 신선한 충격과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곳에서

뜨거운 온천수에 깊숙이 몸을 담근 채 그 환상의 바다를 즐길 수 있던 오후.

검고 짙은 초록빛 돌로 장식된 그 곳에서 깊고 편한 휴식으로

쌓여진 피로를 풀어낼 수 있었던 여유를 가졌었다.

목욕 후 한결 가벼워진 어깨, 조였던 넥타이를 느슨히 풀고

와이셔츠소매를 팔목까지 걷어붙인 채, 혼자 또는 편한 사람들을 불러

마음의 짐을 풀어놓고 들어서던 짙은 갈색의 古典的이며

중세 영국風의 세련된 디자인의 펍 Restaurant "찰리스"

4 년 이상을 한결같은 미소와 남다른 친절로 식사를 도와주던

매력적인 女人 K와 잘 익혀진 T-본 스테이크.

하드롤 빵에다 버터를 듬뿍 발라 아이스 티와 함께 하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겼다.  

촉촉이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분수가 보이는 1 층 라운지 창가에 앉아

유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사이로  불빛이 스며들어

수 만개 수정구슬을 만드는 자연의 마술에 심취하고,

잔잔히 흐르는 피아노 연주 속에 짙은 커피香이 꼬냑의 깊은 香과 만나

입 안 가득 번지는 카페 파라다이스 한 잔을 즐기기도 했는데...


호텔 파라다이스.

나는 그 곳을 아주 좋아한다.

어쩌면 그것이 허영이거나 사치일 수도 있겠으나,  결코 난

호사스러움이나 사치스러움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최적의 투자로 최고의 만족을 창출하려는 연출을

늘 시도하려 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즐기려 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합리적인 변명 같기는 하지만 그것은 허영이 아니고

혼자만의 정적인 자유로움을 즐기려 함이며,  

생활화된 외로움에서 홀로, 또는 다른 외로움으로 접근하려 함이었다.

누구나 다 그러하듯 경영자로서 나도 늘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 외로움을 터는 일종의 도피처로 호텔 파라다이스는

푸른 바다 곁에 있는 가장 정적인 자유로움이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 생각하였기에

스스럼없는 친구처럼 그리로 달려갔었다.







Ⅱ.

그 파라다이스 호텔과 하이얏트 호텔(현 메리어트 호텔)이

나란히 같이 보이는 길 건너 버스 정류소 앞  

겨울 햇살이 아직 미미하게 남아있는 아파트 담벼락에 기대어 섰다.

춥다.

내겐 추운 겨울에 입을 수 있는 두꺼운 코트나 잠바조차도 없다.

그것들이 지금껏 필요하지도 않았고,

내복조차도 언제나 입지 않았으니 있을 리가 없다.

속내의와 와이셔츠와 양복 정장만으로 겨울을 지냈다.

여름옷과 겨울옷의 차이는 양복천의 두께뿐. 겨울이면 이따금

와이셔츠 위에 얇은 면 조끼를 입기는 하지만 두꺼운 옷이 별로 많지 않았다.  

갑갑한 걸 워낙 싫어하는 체질과 성격 탓이기도 했다.

옅은 햇살이 남아있는 양지쪽에 서 있어도 휘몰아치는 겨울 바람을 막을 길이 없다.  

양복 안에 둘렀던 머풀러를 꺼내어 목을 감고 얼굴을 감싸도

북쪽 장산기슭에서 겨울 바다쪽으로 휘몰아쳐가는 차가운 서러움을 어쩌지 못한다.

어쩔 수가 없다.


한때는  

上流社會를 꿈꾸기도 했었다.

한국건축의 미래를 끌고 나갈 젊은 건축가로 선정되기도 한 사람으로서,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때부터 혼자서 몇 개의 회사를 만들고

이끌어 나가는 젊은 경영인으로,

文學과 藝術을 사랑하고 名譽와 富를 가진 者로서 예의와 의를 지킬 줄 알고

남다른 熱情과 다양함. 人間에 대한 진실 된 마음과 사랑을 느낄 줄 아는

그런 多情 多感함을 갖춘 멋진 건축가, 인간적인 경영인을 희망했었다.

어리석게도....


야망과 집념으로 하루를 다른 이들 보다 2 배 이상의 시간으로 산다면

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지 17 년.

나름대로 언제나 남보다 먼저 앞서려 했고 먼저 하려 했었다.

내 뒤를 누가 따라 붙는 것도, 라이벌마저도 허용하려 하지 않았으며,

지게 되면 이길 때까지 했고  

할 줄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할 줄 알 때까지 하려고 했다.

그래서 새벽 서너 시까지 잠들지 못 하는 습관을 얻었다.


잘못의 시작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지지 못한 채,

쉬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치달은 어리석음.

한 번쯤 뒤돌아보라는 주위의 충고들을 철저히 무시했었다.

돈을 모아 쥐어야 할 기회엔 돈을 풀기에 바빴고,

바깥세상의 경제흐름, 그 흐름에는 언제나 거꾸로 흘러갔으니,  

나 스스로의 역량,  경영자로서의 그릇 크기를 빨리 감지하지 못한 우매함과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거만함이 결국 모래 위에 성을 쌓게 했고  

IMF라는 거센 파도 한번에 모든 것을 다 잃었으니  사필귀정.  

어리석은 者. 늘 꿈만 꾸는 者였다.

꿈만 꾸는 者.







Ⅲ.

춥다.

쪼그려 앉기라도 한다면 바람을 적게 맞아 조금은 덜 추울 수도 있을 텐데

체면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오늘따라 버스는 빨리 오지도 않는다.

빌어먹을 일이다. 하긴 그 빌어먹을 버스가 아주 오지 않는다 하여도

달리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머니 속이 그렇다.

집까지 걸어가기에도 너무도 멀다.

걸어가도 안될 것은 없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이내 해가 질 것이고

가는 길목에 황량하게 펼쳐진 수영만의 넓은 공터들과 바다와

다리가 늘어서 있어 그 곳에서 불어올 겨울 바람을 얇은 옷만을 걸친

나로선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 시절 동천 개울 건너에 있던 서면 작은 도서관에서

읽었던 런던의 가로등과 함께 연상되는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나고,

그 소녀가 느꼈던 절박한 가난과 추위가 느껴졌다.  

" 나도 라이터 불이라도 켜서 손이며 몸을 녹일까 ? "

즐겨 듣던 알바노니의 아다지오 선율이 해운대 하늘가로 흘러드니 더 서럽다.

아침을 거른 채 길거리에서 토스트 한 쪽으로 점심을 때운 채로

쫓아다니다가 벌써 저녁때가 다 되어 가니 허기마저도 심하게 느껴진다.

잃을 수 있는 것은 다 잃었는데도 하나 남은 자존심.

그 겨울에 그 자존심만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강추위와 허기짐에도 아랑곳 않고,

나의 이런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 요청도 위로 받기도 싫었다.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더 배가 고프고 힘들었다.

내 주위 모든 사람들에겐 나는 망해도 사장이고

그래도 부자일 것이라는 오랜 인식이 남아 있었고 늘 사야되고

사 줘야되는 습관 탓에 얻어먹는다는 단어 자체가 낯설어서 싫었다.



Ⅳ.

자존심이 남긴 슬픈 에피소드.

난 모든 음식들을 다 잘 먹긴 해도 나름대로는 미식가였다.

꼭 비싸고 고급스런 음식만을 찾는 것이 아니고 국밥이나 칼국수

한 그릇을 먹어도 제대로 하는 잘 만들어진 음식을 찾았다.  

한 때는 그런 음식 중에서도 갓 잡은 싱싱한 가오리 회를 아주 즐겼다.

심지어는 동해안 단골 횟집에서 배를 띄우는 날,  싱싱한 가오리가

잡히면 사무실로 곧장 연락을 해 줄 정도로 가오리 회를 좋아했었는데,

오늘 늦은 아침 해변공원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토스트 한 조각으로

점심 겸 아침을 때우고 서 있을 때,

중년남자 두 사람이 광안리 선창 어시장에서 가오리 회를 사 들고 와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 한 병과 함께 맛있게 먹기를 시작하며

둘이 먹기엔 너무 많다며 같이 먹기를 수 차례 청하고,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까지 나무 젓가락을 쪼개어 손에다 쥐어주며

같이 먹기를 청하는데도 입가에 미소만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만 하며

끝내 사양하고 마는 정신나간 자존심.

선 분홍빛 쫄깃한 가오리의 살점들이 혀끝을 감아 치고,

횅하니 빈 뱃속에서는 들어 오라 난리를 쳐도 끝내 외면하고 돌아 선

자존심이 더욱 더 배고프게 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者의 자존심은 그래서 슬프다. 슬프다.







Ⅴ.

또 춥다.

꼴하고는 ...스스로가 우습기만 하다.

...참, 나는 바보 같은 놈에다 완전히 미친놈이었어, 그동안 무엇을 한 거지 ?

돈 많이 벌어서 무얼 한다고 ?  

심장병 어린이, 무의탁 노인들, 소년 소녀 가장들을 돕겠다고 ?  

그랬었다.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구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일들은 꼭 돈을 벌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돈이 아니고 마음으로 하는 것이었지만

난 제대로 또는 실제로 그들에게 참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선은 적기는 하지만 그리 하고 있었고 그리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저러나 지금 이 순간엔 나는 나의 가족조차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주제. 그런 능력 없는 사람일뿐이었다.

우습게도 그 꿈을 다시 생각하는 동안 입가에 미소가 돌았고

새로운 희망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도 열심히 했잖아. 다시 시작하면 돼 !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 심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라고 다시 못할 리가 없잖아...


허허로운 웃음 끝으로 다시 보이는 하얀 하이얏트 호텔.

맑고 밝은 외벽의 색감과 초록빛 유리 색상이 해운대의 푸른 바다와

멋지게 어울려서 오션 타워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그 형상과 색감이 지워지지 않아 오션 타워 계획의

기본구상의 대상이 되어 주었던 하이얏트.

남쪽으로 바다를 향해 활짝 열려진 커다란 창안으로 따스한 햇빛과

바다풍경이 드는 라운지의 부드러운 케이크와 따스한 커피 한 잔이 그립고,

어느 때인가 깊은 사랑에 빠졌던 여인과 Main Restaurant에서

올리브 油에 흠뻑 적신 빵을 먹으며 바다를 바라다보던 때가 있었고,

해운대 하얀 백사장이 다 내려다보이는 사우나 도그에서 땀을 흘리고 난 뒤

시저스 샐러드를 먹고 바다가 보이는 휴게실 안락의자에 앉아

중요한 서류 초안들을 작성하며 일에 빠지기도 했던 곳.  

그런 추억을 담고 있는 하이얏트 호텔.


덧없이 꿈꾸고 선 者의 회상 앞에 차가운 바람을 몰아 쥔 버스가 도착했다.

이제는 아주 먼 곳.

어쩌면 영원히 두 번 다시는 들어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곳.

벌써 낯선 곳인 듯 싶은 두 호텔을 바라보며  지난 추억만으로

안타깝게 회상하며 버스에 오르며 돌아다보는 해운대에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집엔 어제 저녁부터 커피마저 다 떨어졌던데...



...1999년 1월 shadha의 <고백과 회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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