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픈 발라드가 좋다. 2003
1. 입문.
박스형 밧데리를 뒤에다
고무줄로 꽁꽁 묶은
작은 트렌지스터.
예전에 우리에게 그것이 유일한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휴일이면
황령산이 바라다 보이는
작은 쪽마루에 엎드려
펄시스터즈의 <커피한잔> 노래를 들으며
그 가사를 부지런히 따라 적기도 했었다.
남진, 나훈아.
두 라이벌 가수의 트로트 노래 속에서
고교시절을 보내고 되고,
대중가요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난 으례히 반 대표로 전교생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남진의 <해바라기 마음>과 <파도의 블루스>
그런 연유로
이름 대신 <해바라기>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기도 했었다.
2. Pop의 입문.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서
트로트 일색이던 대중가요에서
ㅅ창식,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등이 중심이 된 포크송 시대.
그때 우연히 트렌지스터에서 들은
존 바에즈의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그 노래로 인해 Pop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하여
테리잭슨, 마리 오스몬드, 어린 마이클 잭슨, 엘톤 죤.등의
이름들을 알아가기 시작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덕 공원( 옛 동아대학교 뒷산 )
친구와 함께 나선 산책길에서 솔밭 사이를 걸으며
그 친구가 부르는 <호텔 캘리포니아>와 < DUST in the Wind >를
들으며 아주 멋있다고 느꼈었다.
그때부터 Pop을 부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시작했다.
월간 팝송이라는 책을 사서 영문가사를 한글 바꾸고,
가사를 해석하느라 영어사전을 뒤졌다.
엘비스 프레슬리, 앤디 윌리엄스, 캐롤킹, 칼리 사이몬,
비틀즈, 밥 딜런, 제니스 조플린, 제니스 이안,...
그리고 소망하던 휴대용 야외전축을 사고
복사판 (해적판) 레코트 판들을 사서 팝송 부르기를 본격화(?)했다.
3. 가수왕 하비스.
그런 노력 끝에 (?)
팝송의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은 군대시절이었다.
매년마다 열리는 부대 안의 노래자랑.
엘비스 프레슬리의 < DO not this Tube >< LOVE Me Tender >< MY Boy >로
두차례나 연거퍼 가수왕이 되면서
부대 안에서 이름과 계급대신 <하비스>로 통했다.
그것도 그냥 하비스가 아니라
< 지성! 야성! 전 세계 온 여성의 연인 하비스> 였다. ㅋㅋㅋ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민망스럽지만 그땐 훈장 같은 애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설상가상으로
애인 사진 콘테스트하면 1등, 애인 편지 콘테스트하면 1등.
PX (부대안 매점)에서 먹을 것을 대접받고 연애편지 대필해주고,
다른 부대에서 애인 사진까지 빌리러 오게 되는
왕성한(?) 활동으로 유명인이 되었다.
4. 클라식 음악 입문
군부대 말년시절.
챠이코프스키의 <1812년 장엄서곡>을 듣게 되었다.
서정적으로 잔잔히 흐르는 고요.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전운과 침묵.
이어지는 격정과 격정으로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통쾌함.
제대 후 총각시절.
클라식 음악에 깊이 심취하여갔다.
쇼팽과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그리그, 라흐마니코프,
베토벤과 모차르트. 헨델과 바하. 그리고 멘델스죤.
그 음악 중에서도 서정적인 고요함과 열정적인 격함이 같이하는,
음폭의 굴곡이 강한 음악들을 좋아했다.
특히 협주곡을 좋아했었던 것 같았다.
피아노 협주곡, 바이얼린 협주곡등,
스케일이 큰 교향곡이나 음률의 변화가 적은 실내악보다...
그 시절,
남포동 클라식 음악다방에 하얀 바바리 코트 깃을 세우고
폼을 잡으며 들어서던 그런 때였다.
그 시절에 친구들은 나를 <하짜르트>라고 불렀다.
헤어스타일이 모짜르트와 비슷했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를 여의고 난 후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수십 번도 더 들은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
클라식의 청춘 시대였다.
5. 재즈..그리고 음악의 전성기
1990년 여름.
모든 것에 비교적 여유가 많던 시절.
비 오는 여름 오후.
남천동 길을 걷다, 작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샘 브라운의 < STOP >
그 음악에 끌려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짙은 커피향 속에 검은 옷을 입은 긴 머리의 아름다운 여인이
주문 받은 음악을 녹음하고 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여인이 추천해주는 음악들...
내 취향에 맞추어 골라주는 음악들은 발라드한 재즈.
한번 들릴 때마다 열 몇 장씩의 음반을 사들고 나와
집에서 밤늦도록 그 음악들을 듣고,
마음에 드는 곡들을 녹음하여 차에서 듣고 다녔다.
루이 암스트롱, Chet Baker, Billie Holiday, Sarah Vaughan,
Laura Fygi , 카르멘 사르, 엘사등과
스팅, 에릭크랩톤, 조지 마이클, 머라이어 캐리, 패트리시아 가스,
바시아, 빅토르라조르 등의 팝과 샹송, 그리고 새로운 음악들..
플라시도 도밍고와 루치아노 파발로티등 성악가들의 음악에 빠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6. CD음악시대
그동안 모은 레코트 판이 2,500장이 넘었다.
이사할 때 이사짐을 나르던 이사짐 인부가 물었다.
....레코드 가게를 하신 모양이죠 ?
CD 역시 몇 백장을 사 모았다.
그러나 음질이 훨씬 더 나은 CD 음악이 본격화되자
음악에 대한 나의 열정이 식어가기 시작했다.
아마 음악 흐름의 경향이 나의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Pop도 요란하게 복잡하며 시끄럽고 빠른 템포의 음악들이 주종을 이루고,
랩을 주로 하는 음악들이 성행하면서 그 매력을 잃었다.
앤 머레이, 올리비아 뉴튼 죤. 엘톤죤같은
감미롭고 서정적인 음악들과 가수들이 뒷자리로 물러섰다.
내게 CD 시대의 음악은 음악 암흑기를 예고했다.
7. 나의 18번.
노래방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노래부르는 시대가 열렸다.
회식이거나, 모임이거나, 사업을 위해 룸싸롱에 들거나,
어김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지금까지 10여년에 걸쳐 레파토리를 만들어 오면서 약간의 변화가 왔지만
이제는 거의 고정적인 레파토리가 정해졌다.
어느 자리에서 변함 없이 그 노래들만을 부른다.
신곡(?) 개발이 전혀 안되기 때문이다.
요즘 노래들은 너무 빠르고, 랩이 들어있고,
가사들이 詩的이 아니어서 감정 몰입이 어렵고,
음율의 변화가 거의 없는 노래들만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18번은 언제나 그 순서까지도 똑같다.
1. Can't Help Falling In Love.... Elvis Presley
2. 창 밖의 여자 ...조용필 ( 때론, 사랑했어요... 김현식 )
3. It's Now Or Never ( 오 솔레미오 )..... Elvis Presley
4. 왜 모르시나......김수철 (때론, 암연.....고한우)
5. Love...... 존레논.
이 다섯곡의 거의 고정된 18번 노래에
에릭크랩톤의 Tears in Heaven과
김정은이 부른 <나 항상 그대를>
이동원의 <이별의 노래>등이 포함되기도 한다.
중간 중간 국내가요를 넣어 부르는 이유는 Pop이 주는 느끼함.
(Pop만 부르면 듣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낄 수 있어서)때문이다.
난 스테이크를 먹을 때도 김치를 꼭 시킨다.
이따금 많이 우울한 날
혼자 단골 노래방에 들러 두시간 이상씩 혼자 쉬지 않고
40곡 이상의 팝송을 불러대기도 한다.
8. 나는 슬픈 발라드가 좋다.
요즘은 팝송을 거의 듣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거나 감정 몰입에 빠질 때
클라식을 주로 듣는다.
알바노니의 아다지오와 라흐마니코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차로 이동 중에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FM에서 나오는 국내가요를 듣는다.
국내가수 중 나는 자우림이 좋다.
그녀는 독특한 대중음악의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베이비복스, 김건모, 쿨, 코요테, 이정현 왁스...가리지 않고 즐긴다.
예쁜 여자가수들의 노래만을 좋아한다고 딸들의 핀잔도 있지만
가볍고 흥겨워서 좋다.
20년 가까이 같이 생활한 동생같은 P실장과 함께 차를 몰고 나갈 때는
이정현의 노래..
...반만, 반만 나를 믿어 봐...봐..봐.봐...를 부르기도 한다.
참, 리아라는 가수의 노래
<눈물> 이라는 노래도 좋다.
그런데...
며칠 전 오전 차를 몰고 광안대교를 지날 때쯤,
이종환의 음악살롱인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 황혼의 엘레지>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그 노래에 빠져들었다.
알 수 없는 향수...
가슴에서 울컥 무엇인가가 쏟아져 흐르는 느낌.
옛날 흘러간 가요가 좋아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 저도 이제 나이가 드는 모양입니다...
나는 슬픈 발라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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