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HA 2003
어느 회장님의 꿈
무적산 기원제 & 산신제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 파란 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그런 푸른 하늘이었어요....
그러하듯 푸른 하늘이 더욱 더 투명하게 빛나던 大雪.
첫 강추위가 매서운 바람과 함께 온 그 일요일 날에.
무적산 낮은 기슭
양쪽 골짜기로 맑은 물 흐르는 개울을 끼고
삼면이 산으로 병풍 두르듯 높고 낮게 모양 잡아 둘러있고
남서쪽 낙동강을 향해 끝없이 열려있는
좌청룡 우백호의 형상을 한 땅이라는 우리 땅.
7만 5천평.
그 땅 중간쯤 북쪽 개울 기슭에 아주 오랜 고목 두 그루가 서 있다.
그 고목들을 위해 오래전에 세워진 사당 뜰에다 모닥불을 피우고,
여섯 분의 스님들을 모셔 산신제를 겸한 기원제를 올렸다.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게 하여,
...저희들 이제 이 땅에다 사업을 시작하려합니다.
부디 무탈하게 사업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시작되었다.
참으로 길게 느껴지는 지난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혼신을 다하여 이루려 했던 사업 중 두 번째로 큰 사업.
지난 가을부터 죽음 같은 벼랑 끝으로 나를 밀어 붙이던...
초조와 긴장 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만들었던 일들 중 하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다....
예순이 갓 넘은 연세에 IMF 사태로 인해 360억이 넘는 부도로
나와 같이 모든 것을 잃었던 회장님.
그 연세에도 그 분은 단 하루도 재기를 위해 쉬시는 날이 없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같이 겪은 우린 언제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도우려 했다.
그렇게 망하여 알거지가 된 상태에서 재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젊은 사람으로서도 피를 말리는 세월을 보내야하는 고난의 길인데...
최고급 승용차를 타시던 그분은 그 차마저 빼앗기고
며느리의 낡은 소형 승용차를 빌려 타고 동분서주 하셨다.
그리고 끝내 그것을 이루었다.
무적산의 꿈을....
땅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
그 분은 두툼한 두 손으로 나의 두 손을 감싸 쥐고 엉엉 우셨다.
....나, 7년 만에 내 이름으로 된 서류에 도장 찍었다.
어젯밤에 우리 할마이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그동안의 서러움에 울고, 기뻐서 울고....밤새도록 울었다.
고맙다....모든 것이 우리 하사장이 덕분이다.
내 지금에사 이야기하지만,
집안일이라 부끄럽고 창피해서 남들한테 말하지도 못했다.
15년 전에 집 한 채도 없이 빌빌거리고 살던
내 동생한테 사람답게 살으라고 1억 5천만원짜리 집을 한 채 사 주고
사장자리도 하나 내어주어 살게 하였는데,
내가 부도가 나서 모든 재산 다 날리고 차도 날리고,
집 한 채 달랑 남았는데, 우리 할마이하고 살아야 될 꺼 아이가...
내 거래 은행에서 편리를 봐 줘 일억만 담보를 걸면 집은 남겨 준다 해서
내가 동생 부부를 불러 사정을 이야기 하고 빨리 재기해서 갚아 줄테니
내가 사 준 너희 집을 담보를 좀 해 달라고 애원을 했었다...
팔자는 것도 아니고 담보만 해 달라 했는데
동생부부는 단 한마디로 안 된다 하고 거절하고 형제간의 인연마저 끊고
우리 할마이하고 내가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아도 모른 체 하더라...
배가 다른 형제도 아니고, 씨가 다른 형제도 아닌 내 친형제도 그런데,
우리 하사장은 홀랑 망한 내가 백번 천번 대구로 올라오라 하면 올라와 주고,
이거해 달라하면 해주고, 저거 해달라면 해주고,
나 때문에 계속 돈도 안받고 일해 준다고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어도
이 미안하고 못난 나를 오히려 위로해 주고...
나를 믿고 따라줘서 고맙다....이제 우리 같이 살자...
같이 멋지게 한번 해보자....
그 분의 뜨겁고 굵은 눈물이 내 손등위에 떨어질 때,
내 가슴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날을 잡았다.
....우리 기공식 때는 거창하게 하제이....
아직 해결하고 헤쳐 나가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하나의 작은 도시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 예순이 훨씬 넘으신 연세가 되신 그 분의 의지와 용기.
그 분에 비해 아직 많이 젊은 나는 너무 나약하고 참 못난 것 같다.
....회장님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십니다.....
....이제는 내가 젊은 당신한테 배우고 도움을 받아야지....
푸르고 투명한 하늘.
피워놓은 모닥불 곁에 이따금씩 다가서서 불을 쬐기도 하였지만,
너무도 추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들 두꺼운 잠바나 코트 등으로 무장을 하였으나
주체중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폼을 잡느라,
달랑 하얀 와이셔츠에 정장차림으로 몇 시간을 산에서 보냈으니,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도 행복하다.
무엇이든 어렵게 고생하여 이루는 것은 그 보람만큼 행복하다.
지난 여름이후 하루도 빼지 않고 앓았던 그 기다림의 감기보다는
훨씬 아프지 않다....
아직 헤쳐 넘어야 할 난관들이 많이 남았다.
아직 축배를 들어야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그 분의 꿈이 이 무적산에 다 들어서 찰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다.
사업 시작을 고하는 기원제를 올렸던 푸른 하늘의 추운 날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