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여름일기- 어떤 인어공주의 새벽.
08/22
1)어떤 인어공주의 새벽은...
요즘 들어서는 방학중인 대학생 두 아이들이 밤늦도록 뒤채고 서대는 통에 거의 새벽 두시가 되어야 자게 됩니다. 아마 그 후로도 두 놈들은 교대로 컴과 비디오를 차지하며 놀다가 또 의기투합하면 나가서 당구를 한 게임하고 들어오거나 라면을 끓여서 나눠 먹고 거의 아침이 되어야 자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나의 기상 시간도 점점 늦어져서 이제는 일곱시가 다 되어야 깜짝 놀라서 일어나고 부리나케 아침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여섯 시에 깨이고 또 다른 일도 남아있지 않는 휴일인지라 수영장으로 향했습니다. 국경일인데도 강습하는 대열이 여럿 있어서 레인을 차지하지 못하고 가장 수심이 깊은 곳에서 혼영으로 십여 차례 왕복을 하니 제법 운동이 되고 땀이 납니다. 수중에서 흘린 땀의 양은 전과 후에 체중을 재어보면 확실히 압니다. 와, 유레카!!
강습생들의 대열도 만만치 않은 물살을 일으키며 열기를 뿜어내기에 우리도 열심히 따라 합니다. 수영에 대한 경력으로 말하자면 일천한 강습생들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나날이 근력이 떨어지는 세월 앞에서야 폼도 무너지고 꽤만 살아납니다.
삼십 년 전 와이엠시에이에서 하던 학교 체육 시간의 연장은 아버지의 노여움으로 테니스로 수강 변경해야했고, 이십 오년 전 남해 상주 해수욕장에 갔던 가족 휴가에서 파도에 싸 안겨 죽을 지경의 나를 살린 후 어머니는 부디 꼭 수영을 배우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그리 세월이 흘러 이 도시에 국제 대회 규격의 실내 수영장이 생기자마자 부터 애들 둘과 함께 버스를 타고 다녀오면 별의별 험담을 다하는 남편이 또 다른 걸림돌이었지요. 에궁, 우리 집 남자들의 고루함이라니...
그가 권하는 대로 테니스를 배우고 함께 난타를 치며 보내던 시간은 지금 생각하니 체력은 엄청 키워지는 계기가 되었네요. 그러나 하루에도 다섯 벌씩 내의를 벗어내며 테니스메니아가 되었던 그가 발목의 관절이 부실해지면서 선회한 것이 수영 쪽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수영이 좋은 운동이라며 남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가족들과 동반하기도 하더군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이미 각 영법을 배운 애들은 아빠를 앞지르며 피래미처럼 매끄럽게 나가니 너무나 놀란 그도 돈 들여서 개헤엄을 벗어났답니다. 지금 제일 잘하는 영법은 좌우 대칭으로 힘차게 날아가는 버터플라이 영법입니다. 가장 힘이 많이 드는 것을 즐기는 그의 뒤를 살살 평영으로 따라가면 남은 물살 덕에 쉽게 가지요. 남들이 보곤 고래 뒤의 멸치같다지만 새우라면 어때요? 쉽사리 터질만한 등도 아닌데...
오랜만에 느긋한 아침을 온 식구가 함께 먹고 시어머님 산소에 벌초 나들이를 하기로 합니다. 작은애는 죽어도 싫다고 빼고, 역시 장남은 타고났는지 큰애가 앞섭니다. 갈아입을 일복과 마실 냉수와 장갑을 챙기고 새 낫은 가다가 사기로 합니다. 끝나면 애들 아빠의 외갓집 그러니까 우리 애들의 진외갓집에 들려서 외숙모도 뵙고 오자고 합니다.
그는 왠일인지 해마다 푸새해도 입지 않고 다시 풀을 빼게 했던 모시 윗저고리를 차려입고 나섭니다. 세월이 철 들게 했나, 그렇게 안 입는다고 외면하더니... 입고 나서니 육척 큰 키의 좋은 옷걸이가 날개를 만난 듯 온 주위가 환하게 빛이 나고 희고 가는 모시발이 눈부시게 곱습니다. 어머님 살아 계실 때의 명언, '옷 잘입기는 마나님 덕이란다'를 일러주며 슬쩍 우쭐해 봅니다.
'01.8.22
광복절 하루를 되돌아보며 푸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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