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하얀 빨래 Re:빛과 色, 창으로 부는 바람
08/17
하얀 빨래
기찻길 주변에 지은 좁고 낡은 집들은 쓰러질 듯 기울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철로변에 가꾼 작은 텃밭엔 고추가 붉어가고 하얀 깨꽃 무리가 야생화 무더기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깨끗이 널어둔 빨랫줄의 빨래들, 거기엔 일상의 리듬이 흐르고 있고 책임감 있는 여인이 살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어 밥짓는 연기엔 쓸쓸함이 있어도, 아침에 널어둔 빨래에는 오직 산뜻한 평화만이 있습니다. 바람을 머금어 풍선처럼 부풀기도 하고 뒤집힐 듯 날리기도 하겠지만 집게로 잘 집어둔 빨래는 물기만 날리고 고슬고슬하게 말라가겠지요.
그래서 빨래는 유치환의 깃발처럼 노스탈지아의 손수건이었겠지요. 갈 수 없는 먼 동경의 나라를 향한... 그런데 베니스의 빨래들을 보니 사람 사는 곳의 여일함이 마음 편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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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님,
지난 번 답글에 답을 못 드렸네요. 항상 좋은 한마디 잘 읽고 공감합니다.
그대는 달빛 하얀 메밀꽃 밭을 알고 있나요? :메밀꽃은 너무 작아서 무리지어 있으면 소금을 뿌려논 듯하다는 표현이 딱 맞지요. 그것도 달빛 아래서라면... 나는 배꽃 하얀 밤을 사무치게 본 적이 있답니다. 야산의 구릉을 타고 펼쳐진 정경은 숨이 막혀서 함께 그대로 녹아버릴 것 같았지요.
개구리 우는 논두렁 길을 이슬에 젖어 거닐어 보셨나요? :한 때는 개구리 피부로 실험을 하느라고 수천 마리의 개구리를 죽였답니다. 충청의 어느 저수지로 낚시를 갔다가 밤새 우는 개구리 소리를 못 견뎌하던 날이 기억납니다. 어떻게 울었냐구요? 이십원, 사십원, 육십원 하면서지요. 거머리 잔뜩 달라붙은 개구리는 못 쓰고 살려주지요.
기차가 터널 속을 지날 때 한웅큼씩 바람에 실려 오는 천리향 냄새를 맡아 보셨나요? :터널은 과거의 시간으로 흡인되는 듯한 착각을 줍니다. 검은 창 밖, 비로소 선연해지는 나의 모습이 있지요. 향기 나는 꽃이고 싶었던 청춘의 내가 스쳐갈 뿐입니다.
상념의 흰 띠마냥 흐르는 강줄기를 몇 번이나 건너 보셨나요? :철교 위를 덜컹거릴 때면 눈 아래 굽이치는 강물의 수면이 되쏘는 빛, 하얀 모래. 언덕 위의 고가에 피고 지는 꽃들과 함께 내 상념의 푸른 열매가 익어갔지요.
비 온 후 산협에 걸리는 오색의 프리즘을 만져 보셨나요? :폭우 속을 달려서 열중하며 해낸 일이 무사히 끝난 후 문득 개이는 하늘, 그 허전함을 달래며 고개 들면 보이는 쌍무지개, 풀잎의 이슬이 발등에 떨어집니다. 그런 날은 기차의 적절한 율동에 동조해서 깊은 잠에 빠집니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다섯 시간쯤.
'01.8.17 이곳에서 신의주까지 기차여행을 꿈꾸는 푸른샘.
: 심장의 박동 소리만이 존재하는 새벽~~ : 이 우아한 항아리들같은 정제된 고요가 : 새벽엔 있습니다. : 바람도 풀벌레도 목청높이지 않고 : 낮게 낮게 흐르지요. : : shadha님 : : 여행의 뒤안에서 만나게 되는 : 베네치아의 자잘한 일상이 우선 눈에 들어 옵니다. : 빨래줄에 즐비하게 걸려 있는 빨래들을 보면서요. : 매일같이 빨아 정갈하게 말려야 할 일상의 냄새들 : 옛 선인들처럼 그들도 풀 먹인 빳빳한 : 모시옷의 질감을 알고 있을까요? : : 흰 테가 둘러쳐진 작은 쪽창에 얹어진 붉은 꽃을 보며 : 붉은 색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저도 : 숨구멍같이 조그만 창에 놓여진 : 그 선명한 취향을 조금은 선호합니다. : 그 창으로 베네치아의 강렬한 힘을 느끼게 하는 : 빛과 色이 교차하는 것을 느끼면서.^^ : 강렬한 바람 속에 울림하는 낯선 향기를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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