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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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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하늘 하얀새

하얀새87 가을에 대한 사유

SHADHA 2004. 2. 19. 23:07


하 얀 새



가을에 대한 사유

11/03








가을비가 내린 후로 아 ~오늘은 정말 찬기운이 느껴집니다.
아침에 학교길에 오른 큰 딸아이에게 두꺼운 겨울 외투를
좀 이른 듯 했지만 입히고 옷매무새 마저 잘 여며 보냈지요.

어제 문득 아이들의 한자학습을 도와주다가 잎엽(葉)자를
보고 있노라니
글자속에 세상 세(世)자가 새삼 눈에 띄였어요.
아 이렇듯 잎이란 자연의 일부이지만
그안에 세월이 아니 세상이 숭고하게 스며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작은 잎새 하나지는 소리조차 세상의 순리중 하나이고
겸허히 받드는 인간사 이치가 아닐런지요.
떨어져 제 몸을 썩히고 다시 양분이 되어 몇번이고 올랐던
수(樹)맥을 따라 다시 푸른 잎이 되는 희망으로
지고 또지고 피고 또 피어납니다.

아 ~
가을은 누구나 겸허하게 만드는 요술장이요.
스승입니다.
크게 나무라지도 한해동안 잘 살았다고 너스레를 떨지도 않습니다.
그저 생긴대로 물들고 제안에 품어두었던 소리없는 사유를
제각기 물드는 색깔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의 사유는 이제 그리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지 못한듯 합니다.
오늘 아침 쌀쌀하게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귓등에 속삭입니다.
어서어서 그들과 나눌 이야기가 있으면 나누어 두라고요.
아니면 그들 잎새들과 함께 겨울동안 이야기를 묻어두라고요.

봄날의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그토록 소리내어 말하지 못한 잎새와 우리들의 이야기가
얼음장 밑에서 하얀 눈속에서 그리고 숲속 적막한 숲길에서
더 많이 견디어내고 참아낸 이유일것 입니다.

가을날이 저만치서 나에게 안녕을 말하려 할때
아~
나의 가을도 이제 단풍비 속에 무심히 흘러내립니다.

**하얀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