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히말라야 잔스카 강변과 시한부 인생 본문
나는
언젠가부터 지속적으로 잔스카르를 꿈꾸고 있었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스스로가 세운 소망을 이루고 난 후,
모든 것을 훌훌 다 털어 버리고 떠나서
세계의 모든 땅들을 다 돌고 돌아서
내가 살았던 모든 세상을 충분히 다 기억하게 한 후,
마지막으로 와서 머물고 싶은 땅.
잔스카르.
히말라야 산맥 속 광활하게 펼쳐진 초록 평원이 내려다 보이는
잔스카르강변의 잔스카르 산맥 기슭에
척박하지만 순수한 자연과 잘 어울리는 하얀 벽의 작은집을 짓고
9개월간의 긴 하얀 겨울을 준비하고 싶다.
보고 싶은 책들을 창문 가까운 벽에다 쌓아두고,
파란색과 초록색과 하얀색 유화물감을 준비하여 두고,
라흐마니코프나 쇼팽과 그리그의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나무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난로 옆,
햇볕 드는 창가에 편한 안락의자 하나 놓아두면 좋겠다.
맑고 상큼한 향이 나는 담배를 챙겨놓고,
그윽한 향이 도는 차와 커피도 마련해 놓고,
이윽고 긴 겨울이 시작되면
하얀 추위와 하얀 눈으로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잔스카르 하얀 벽의 작은 집에 머물며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그동안 세상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 했던
많은 고뇌와 업을 털어내며, 살아온 이야기를 적어서 남기고
그동안 돌아보았던 이 세상 모든 풍경들을 정리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9개월간의 긴 겨울잠에 빠지고 싶다.
히말라야의 깊은 계곡들을 타고 내려온 잔스카르 강물에
나비들이 날며 춤 출 때까지...
그리고는
애초부터 아무것도 아닌 듯, 없는 듯,
조촐하게 또는 평온하게
자연으로 돌아가길 꿈꾼다.
그래서 잔스카르를 꿈 꾼다...............2021년 1월 1일
며칠전 열심히 세상을 살던 내 나이 또래의 지인이 일을 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 전날에는 등산도 갔다 왔다는데...산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심부전이라는 오래된 지병을 앓고 있는 나도 1월 말에 호흡곤란으로 백병원 응급실에 들어갔다가 9일간 입원했다가
2월 7일 퇴원하였다.
병이 완치되어 퇴원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다른 검사를 계속하면 신장(콩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의사의 판단에 의해 퇴원한 것이다.
지병인 심부전에 추운 날씨에 기관지염에 걸리면서 건강이 갑자기 악화된 것이다.
심장 기능과 신장 기능이 더 나빠진 것이다.
이번에 건강이 악화되지 않았어도
건강한 사람들에 비하여 조금 더 짧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담고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남아 있던 짧은 삶도 더 짧아진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시한부 인생...인간은 태어나면 누구나 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늘 그것을 망각하며 살고 있다가 새삼 지금 나는 알 수 없는 나의 삶의 잔여 시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 썼던 <그래서 잔스카르를 꿈꾼다>를 다시 읽어 본다.
'꿈꾸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칭하이 호와 나의 남아 있는 삶에 대하여 (0) | 2023.02.27 |
---|---|
물이 갈라지는 곳, 일-쉬르-소르그 (0) | 2023.02.24 |
그리스 이드라 섬 (0) | 2022.12.30 |
지금도 도시국가를 꿈꾸다...두브로브니크 (0) | 2022.09.14 |
아드리아해의 보석 트로기르 (1) | 2022.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