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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안동>도산서원 본문

신라의 숨결(경북)

<안동>도산서원

SHADHA 2004. 1. 24. 15:36


韓國 旅行







도산서원

陶山書院







도산서원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학자이신 퇴계 이황선생이
명종16년(1561)에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직접 지어
이곳에서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강론을 통해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바르고,
참되고, 양심있는 인재를 많이 길러낸 사학(私學)의 원천으로,
요즘 같으면 사립학교와 같은 교육의 전당이다.
도산서당이 서원건물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을 보아도
선생의 소박함을 알 수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 4년 후인 1574년에는 제자들과 유림들이
힘을 합해 후학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뒤편에 선생을 추모하고,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기 위해 도산서원을 건립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575년에는 선조 임금께서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하사하시어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1969년에는 사적 제170호로 지정하여
선생의 학문사상과 애국심을 기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명종 임금께서는 퇴계 선생이 보고 싶어 화가를 시켜
도산의 그림을 그려오도록 했고,
정조 임금께서는 평소에 선생을 흠모하여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하여 어명을 내려
특별과거인 도산별시(陶山別詩)를 보여 시상하였으며,
공자의 77대 종손인 공덕성 박사는 상덕사(常德祠)를 알묘한 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휘호를 남겼는데,
'퇴계 선생을 추나라의 맹자, 노나라의 공자와 같이
대학자이고, 성인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옛부터 안동을 추로지향'이라 하여
예와 의리가 밝은 선비의 고장이라 불러왔다.

'도산'이란 지명 유래는 옛날에 도산서원이 있는 이 산속에서
옹기를 굽던 가마가 있었기 때문에 옹기 굽는 산이라 해서
질그릇 도(陶)자, 뫼 산(山)자를 써서 도산이라 부른다.
서원 주위는 그리 높거나 크지도 않은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산수의 맑고 아름다움을 보아 학문을 닦기에는
아주 적당한 장소임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선생을 보고 우리는 '퇴계(退溪)'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이가 많이 드신 노인들은 선생처럼 아주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니까,
선생집앞에 흐르던 시냇물이 그만 거꾸로 흘렀다고 해서
물러갈 퇴(退), 시내 계(溪)라고 해서 '퇴계'라고 불렀다고도 하는데,
아마 와전된 것 같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이 태어났다고 한들 어찌하여 흐르던
시냇물이 거꾸로 흐를 수가 있을까?
퇴계란 선생의 호(號)인데 '퇴거계상(退居溪上)'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벼슬에서 물러나 시내 위에 집을 지어 물욕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자료글....


























2003년 2월말경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