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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어느오후05 무심코 떠난 기차여행 본문

어느 오후의 꿈

어느오후05 무심코 떠난 기차여행

SHADHA 2004. 1. 31. 19:34


어느 오후


무심코 떠난 기차여행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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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은 간이역에도 여전히 봄은 오는군요.
어쩌면 여긴 너무나 낯설어 어울리지 않는 풍경으로
그 배경에 영원히 끼워들지 못하는 이방인이 될지도 모를 이 곳에
몇시간 더 빨리 봄은 이렇게 달려와 햇살좋은 양지역의 목련에 머물고 있군요
바람에 꽃이파리마다 방금 도착한 여행객의 조심스런 시선을 옮겨 놓으며
봄은 이렇게 오는군요.

어느이의 말처럼 필사적으로 속눈썹에 매달리는 봄햇살에
간이역 한가로운 벤취에 잠이 든 어느 오후의 전경은
눈이 부셔 눈물날것 같은 봄햇살에 실날같은 미소를 담고
어긋난 약속의 만남에도 떠나온 바보를 위로하는양 몰래 따라온 바람이 너무 좋은날
봄은 이렇게 오는군요.

스쳐가는 인연들의 숱한 사연들을 서로 교차점에서 건네주며
잠시 머물던 기차들은 긴 미련을 절뚝거리며 끌고 끝없을것 같은
아물거리는 봄의 아지랭이속으로 사라져 가는데
차마 마지막 미련 못 떨쳐 가지 못한 어느 이의 시선만 남긴채
봄은 그렇게 위로 위로 가는군요.
당신이 계시는 곳으로 소리없이 가는군요.

봄은 이렇게 오고
봄은 그렇게 가는가 봅니다.
떠나는 이가 있고
떠나 보내는 이가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도 언제던 이 간이역 목련에 봄은 머물겠죠?



너무나 햇살과 바람이 좋아서... 무작정 기차를 탔다
무작정은 아니다...
며칠전부터 아니 오래전 부터 생각해온...계획이었으니까.
그 생각뿐인 계획을 실행케 해준 범인은 어디까지나
아파트앞에 노랗게 핀 산수유에 머무는
너무나 깨끗한 아침 봄햇살과 바람탓이다
아니다....아니다.....
떠난다는거...
일상을 벗어난다는거...
아무도 모르는 낯선곳에 서서 나를 바라본다는거...
그리고 하루쯤 내가 아닌 내가 되어 과감히 현실을 일탈한다는거...
매일 갈망하던 그리움과도 같은 희망사항이었는데
왜 그 많은 날들을 그냥 생각으로 접어 두기만 했을까?
목적지 없이 떠나는 기차여행은 왠지 낭만스럽고 설레게 한다.
어디던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내려서 그속으로 스며 들리라...

너무나 조용한 시골의 어느 한가한 간이역..
그너머 보이는 운동장이 넓은 학교가 너무나 정겨워서 눈길이 머문곳..
정말 너무나 조용해서 다른세상에 온듯한 이 평화로움...에 대한 일순간 이질감
그냥 천천히...천천히 봄속으로 걸어들어갔다..머리결을 날리는 기분좋은 바람이다
행복한 기분이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일게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가슴으로 뭔가가 스며드는 듯한 이 기분..
혼자 세운 은밀한 계획을 성공한듯한 이 만족감..
운동장에서 티없이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선생님을
멀리서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리본이 이쁜 분홍색 옷에 장난삼아 흙탕물을 뿌리던
머슴애와 그 흙탕물이 밴 옷을 잡고 울던 계집애..
우는 짝꿍에게 당황해 물한바가지 부어 펌프질 하듯
해야 나오는 손잡이 긴 수도를 얼굴뻘개 펌프질하던...
순수와 꿈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오랫동안 모든걸 잊고 온 나만 거기에 없을뿐..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뭔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뭔가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았는가?
뭔가를 안이한 편안함에 버려두지 않았던가?
그래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배워야지..내가 하고 싶어하고 원하는거라면..
대학에 다시 들어가야겠다.
내가 원하던 길을 선택해 첨부터 천천히 다시 걸어가야겠다.
언젠가는...언젠가는...하면서 미루어온 시간들이 얼마나 무심하게 흘려갔던가?
다시 걸어온길을 뒤돌아 걸어가는 바보라고 행여 손가락질 할지 모르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평생 미련을 남길꺼라면 다시 걸어가봐야겠다.
이렇게 어느날 모든걸 잊고 떠나온 오늘 하루처럼....
이렇게 다시 내가 소망하던 길들을 걸어가 봐야겠다.

돌아오는 창밖으로 멀리서 돌아오는 봄바람이 잠시 머물다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