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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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홍곡에서 법성포까지 50킬로를 달려 해 저물게 고창 선운사에 도착했습니다. 선운사 입구의 너른 들판은 유명한 풍천 장어구이 냄새가 가득하여, 고향집 가까이 다다른 포근함을 줍니다. 그러기에 가슴 넓은 선운사의 진입로는 누구나 마음을 탁 놓게 합니다. 이곳 자랑인 해수 사우나도 즐길 겸 찾은 산새도 호텔은 이미 한 달 전에 예약이 끝나고 빈 객실이 없습니다. 바로 뒷집 선운장 여관도 예약이 모두 끝난 주말입니다. 좀 더 산 아래로 바짝 다가선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고 다시 선운사 네거리에 나가 풍천 장어구이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늘상 다니는 신덕식당은 이제 날로 번창하여 그 소박하나 초라했던 고태를 벗어버리고, 엄청난 크기로 대량 수용을 자랑하는 명물 식당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선운사 동백은 엊그제 작고하신 서정주님의 詩 속에서 애틋한 아름다움으로 점화되고, 드디어는 송창식 형의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라는 노래가 유명해지면서 환상적인 느낌을 주지만 사실 그 두 사람이 말하는 동백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변함없이 풍천 장어를 맛보고, 그 집에 걸려있는 호탕한 남도 소리 단가 <호남가> 한 편은 읽을 수 있습니다.
함평 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려 허고, 제주어선 빌어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 흥양에 돋은 해는 보성에 비쳐 있고, 고산의 아침 안개 영암을 둘러 있다. 태인하신 우리 성군 예악을 장흥하니 삼태육경의 순천심이요 수령방백의 진안군이라, 고창성에 홀로 앉아 나주풍경 바라보니 만장운봉은 높이 솟아 층층한 익산이요, 백리담양 흐르는 물은 굽이굽이 만경인데 용담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며, 능주의 붉은 꽃은 곳곳마다 금산인가. 남원에 봄이 들어 각색 화초 무장하니 나무나무 임실이요, 가지가지 옥과로다. 풍속은 화순이요, 인심은 함열인데 이초는 무주하고 서기는 영광이라. 창평한 좋은 세상 무안을 일삼으니 사농공상 낙안이요, 부자 형제 동복이라. 강진의 상고선 은 진도로 건너갈 제 금구의 금(金)을 일어 쌓아노니 김제로다. 농사하는 옥구 백성 임피사의 둘러 입고 정읍의 정전법은 납세인심 순창이요, 고부청청양류색은 광양 춘색이 새로웠다. 곡성의 숨은 선비 구례도 하려니와 흥덕을 일삼으니 부안 제가이 아니냐. 우리 호남의 굳은 법성 전주 백성 거느리고 장성을 멀리 쌓고 장수로 돌아들어 여산석에 칼을 갈아 남평루(樓)에 꽂았으니, 대장부의 할 일이 이 외에 또 있는가.
객지에서의 숙박은 항상 약간의 불안과 긴장으로 선잠을 자게 합니다. 눈거풀이 감기는 피로 속에서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寅時 경부터 뒤척입니다. 어제 본 백양과 내장, 내소사의 잔경이 어른거리며 그 감동을 잊을까 봐 다시 새기느라 더욱 머릿속이 청명합니다. 들창 밖에는 잎새에 앉은 빗방울이 간혹 후둑거리며 떨어집니다. 그래도 여섯 시까지 뜨거운 황토 온돌을 즐기다가 어스름한 박명 속으로 일어나 선운산으로 향합니다. 벌써 부지런한 사람들은 모다 나와서 절로 가는 아스팔트길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카메라를 맨 사진 팀들을 여럿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거칠 것 없는 깨끗한 절경을 위해 신새벽을 기다린 모양입니다.
선운사에 시혼을 두신 이곳 고창 출신의 미당 서정주님의 詩碑를 지나서, 매표소 부근에서 이른 커피 한잔을 마시고 좌측의 계곡이 이루는 선경을 따라 들어가면 쉽게 천왕문에 도달합니다. 부지런한 이들을 위해 벌써 선다원에서는 불교용품과 갓 내린 녹차를 팔고 있습니다. 맞배지기 다섯간의 대웅보전 앞에선 9층석탑과 좌우 두 그루의 목 백일홍의 고아한 품위에 압도되면서, 맞은 편 산을 보니 안개 속에서도 탐스럽게 웨이브진 머리털처럼 관목과 잡목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산을 배경으로 키 큰 감나무 가지들이 이루는 공간 분배와 주홍빛 감의 결정이 풍성하게 넘치고 있었습니다. 대웅전 뒤란으로 씩씩하고 짓푸른 동백 숲은 이제 곧 붉은 동백꽃을 피우고 뚝뚝 떨어뜨려 하얀 눈 속에 다시 한번 나를 부르겠지요.
천왕문 맞은 편의 극락교 부근은 우산살처럼 고르게 펼쳐진 단풍나무 가지들의 우아한 자태를 영상으로 담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그 유연한 곡선과 고목의 검은 색채가 이루는 아름다운 실루엣은 크로키하기에도 좋은 소나무와 바위의 어울림만큼 마음에 안겨옵니다. 수 백 년 된 나무들의 맨 몸매를 즐기며 숲을 걸어보면 춘란은 지천으로 푸릇푸릇하게 자생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빈들에는 어린 스님들이 갓 일궈 논 어린 차밭이 눈길에 향긋합니다.
선운사는 나무 가지 위의 단풍보다 떨어져 구르는 단풍이 더욱 마음을 끕니다. 바람 따라 길가로 쓸려서 마르며 바스락거리는 갈색 낙엽들은 몇 년을 두고 켜켜히 쌓인 듯 엽맥만 남은 것과 지나는 차바퀴에 깔려 납작하게 길에 붙어버린 것들이 도장처럼 선연히 찍힌 채 길바닥 문양으로 남아있습니다. 어젯밤 내린 비로 갓 떨어진 고운 애기 단풍잎을 주어 모으며 나는 그 옛날의 유치한 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를 읊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가를 따라 도솔제에 오르면 그 표표한 수면 위로 그려지는 추경은 진실로 가을 그 자체일 뿐입니다. 단 몇 장의 필름에 담을 수 없는 풍경을 가슴에 적셔 넣어두며, 소나무 울창한 길을 따라 내려옵니다. 극락교 주변의 거목과 은행잎들의 융단은 다시 한번 감탄과 경이로운 찬사를 받으며 펼쳐져 있습니다. 낙엽과 작은 돌, 細石의 조화는 선운사만의 색다른 맛입니다. 아담한 백양사의 애기 단풍과 웅장한 스캐일의 내장산 풍치에 감탄하고, 내소사 침엽수 사이의 주홍빛 베일에 몰입한 후인데도 순진한 유치원생처럼 나는 맨 끝에 본 선운사 단풍에 최고점을 주고 말았습니다.
에필로그 - 돌아서 법성포로 향하는 길은 좀 더 잦아진 빗방울 소리로 조급해집니다. 오래 전 뽑아버린 테이프, 멘델스죤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넣고 빗소리에 맞추어 들어봅니다. 그 음악을 듣는 것은 다 나은 줄 알았던 상처의 피떡을 떼어보는 일입니다. 아직 새 살이 돋지 못한 상처는 다시 선홍색 핏물이 고이고, 잊은 줄 알았던 슬픔은 칼로 저미듯 屠肉하는 기세로 밀려옵니다. 멀리 밀려간 바닷물이 갯가에 남겨 놓은 붉은 조류 식물들도 상처처럼 흩어져 남아있습니다.
법성포 가는 반월형의 해안 도로를 따라 바다 안개는 벨트처럼 산허리를 감싸 안고 아련한 산의 뒷모습만 보여줍니다. 왕새우 양식장들과 국내 최대 바지락 생산지를 갖는 드넓은 바다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어 아직 안개 속에 순결합니다. 영암의 불갑사 蓮花池, 함평 해보의 용천사 절 마루를 숨겨두고 달리는 길은 이제 빗발이 더욱 굵어집니다.
'00.10.29 에 다녀온 길을 '00.12.30 에 푸른샘 옮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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