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불갑사 상사화야, 너의 침묵을 본다.
12/24
불갑사 상사화야, 너의 침묵을 본다.
함평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함평 천지의 너른 들판가에 자리잡은 곤충 연구소, 나비 전시관을 살풋 지나면 톱머리 해수욕장과 끊길 듯 이어진 광활한 낙조의 모래 벌판 조금나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나룻배가 드나들며 물물교환의 장터이자 토하 새우젓이 많이 거래되던 곳이었다는데, 이제는 송림과 망망한 모래밭이 종일 석양을 기다리듯 고요하게 멈추어 선 곳입니다.
함평을 관통하여 광주쪽으로 향하다보면 해보면을 벗어나 어느새 영광의 佛甲山 갈피로 들어가게 됩니다. 어렵게 초입을 찾아든 한가로운 양광의 불갑사 입구는 계곡부터 석축 쌓는 일이 한창입니다. 텃밭들이 자연스럽게 흩어진 길가에도 지천인 상사화 푸른 잎은 밝은 초록빛입니다. 여러 채의 절집을 보수하는 잔망치 소리가 들리는 대웅전을 두고, 낮은 언덕 아래를 감싸 돌면, 문득 높다란 水門에 갇힌 가마솥 모양의 저수지, 蓮花池가 나타납니다. 지난번 이른봄에 잠시 들려서 바라본 연화지의 물은 봄볕을 받아 아지랑이를 모락모락 피어올려서 영락없이 거대한 가마솥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가을에는 가뭄 탓인지 수문을 열어 모두 방류한 뒤라 저수지 바닥에서 헤엄치던 굵고 잔 바위들이 가을 햇살아래 해바라기를 하고있습니다.
연화지 곁으로 난 오솔길을 오르면, 금새 지표에 가득한 상사초들의 군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군데군데 게시된 팻말에는 지난가을 풍성하게 꽃대를 피어 올린 붉은 꽃무릇들을 가득 담은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상사화(Love stick flower)는 지금은 꽃이 없어 상사초인데, 마치 겨울 寒蘭처럼 잎만이 푸르고 싱싱합니다. 그러나 추석 명절 무렵이면 잎은 간 곳 없고 쑥 올라선 꽃대 끝에 나리꽃 비슷한 통꽃이 대 여섯 개까지 함께 피어오르며 상사화라 불립니다. 상사화 모양은 남쪽에 있는 어느 절에나 비슷하지만 이토록 수억 포기의 상사초로 피어나는 것은 오직 이곳과 고개 넘어 용천사 뿐입니다.
선운사(禪雲寺) 상사화
-진동규
무서리 친 대지에 나서보면 한 생애가 얼마나 쓸쓸한 것인지 어떻게 아름다워지는 것인지 제 빛깔로 돌아가는 낙엽은 속삭여 주지 뒤돌아보던 그대 모습으로 서리꽃 피고 돌아오지 않는 발자국마다 상사화 돋아나지
흰 눈밭에서 더 짙푸르던 그리움 안타까움마저 접어버린 사람아 흐드러지던 봄꽃들 다 지고 난 지금 무성한 숲에서 비로소 너의 침묵을 본다 실오라기 하나까지 삭아 한 대 뼈로 곧추선 상사화야 꽃 붉은 넋으로 피는 상사화야
연봉까지 오르는 길을 따르면 아직 붉은 단풍나무들은 학이 날개를 편 듯 겨드랑이를 들어올리고, 엉성한 가지를 추겨 올린 채 성근 잎새를 달고 있습니다. 구수재까지 오르는 길 내내 빽빽한 상사화 군락의 습한 지표와 관목의 혼잡함이 숱한 자갈들과 바위로 무게를 짙게 누르는데, 푹신한 카펫처럼 두텁게 떨어진 단풍잎은 밟히면 바스라지는 소리를 내지릅니다. 바위- 녹슨 구리처럼 청동의 녹 이끼를 입은 화강암의 바위들... 묵은 나무들은 그 바위를 감거나 쪼개며 뿌리를 박고 쓰러지더라도 함께 하는 결사적인 자세로 섞여있습니다.
구수재에 올라 평평한 좋은 곳에 잘 자리잡은 두 봉산의 무덤을 감상하고, 밀집한 숲 때문에 겨우 조금 보이는 하늘을 방향삼아 용봉까지의 좁은 길을 택해 미끄러운 비탈길을 오릅니다. 건조한 비탈이 점점 심해지자 결국은 기다시피 풀뿌리를 거머쥐고 겨우 산정에 올라 보니 枯死木들이 남북동란 때의 치열한 전투를 피해 오른 패잔병처럼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지리산 지류인 이곳도 전쟁 때 숱한 살상과 피신의 역사가 피비린내 나는 곳입니다. 아마 더 찾아 오르면 불갑사 절터의 꼭지점인 연봉까지 오를 수 있겠지만, 어디선가 동박새 우는 소리에 섬짓해져서 짧은 해를 탓하며 돌아섭니다.
하산 길, 다섯 손가락 애기 단풍 한 잎을 주워 두 손가락으로 꼭 누르며 걷다 보니 단풍이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벌떡거리며 뛰는 맥박이 확실해서 신기하다고 들여다보니 내 두 손가락 끝에 전달된 붉은 맥파가 엽맥 위에서 뛰고 있습니다. 올 마지막 단풍의 모습입니다.
하산하며 언덕에 올라 대웅전을 만났습니다. 이 소박한 삼 칸 대웅전의 문 창살을 보니 그 유명한 내소사의 연화문 창살과 꼭 같은 것입니다. 도리어 좌우 양 칸의 것은 특이한 봉소형의 문살을 가진 칸막이로서 채색 안한 질박함이 더욱 뚜렷이 아름답습니다. 대웅전 곁에선 洗心亭은 흐르는 샘물로 넉넉하고, 곁에 있는 한 평 남짓의 장광은 담도 치고 대문에다 대문 머리까지 달고 있는 것으로 그 갖추어진 장광의 형태를 처음 보았습니다. 남자 스님들만의 살림인지 정지에서 밥짓던 스님이 기르던 토끼를 찾으며 부르는 목소리가 탁탁합니다. '소리야아.'
화장실 곁의 수백 년 된 암수 은행나무가 떨군 노오란 은행잎사귀를 주어 모으며 마음도 노랗게 물드는데, 예의 남자화장실엔 좋은 경귀가 붙어있다며 싱글거리는 사람을 봅니다. 여자 화장실에는 도무지 종이라고는 화장지 대신 쓸 신문지 자른 것뿐이던데... 안방보다 깊고 넓은 밑 칸에는 분뇨의 바다 위로 찬바람만 몰아치던데... 삐쳐서 돌아서는 길, 선사들의 부도 밭 곁으로 선 여인들의 백일 기도처, 칠성각 뒤로 자지러질 듯 아름다운 단풍은 때늦은 핏빛입니다.
'00.12.24
11.11 에 다녀온 길을 되짚으며 푸른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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