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도갑사, 마왕재 억새밭에 묻은 기도는
01/13
도갑사, 마왕재 억새밭에 묻은 기도는
영암군 구림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접어드는 도갑사까지의 진입로 삼 킬로미터는, 봄이면 화사한 벚꽃 터널이 꿈길처럼 화사하고, 가을이면 불붙듯 타오르는 단풍과 플라타나스 넓은 갈색 잎의 느린 낙하로 스산한 아스팔트길을 사색하게 합니다. 물론 그 조금 전에 만나는 일본에 문물을 전한 백제시대의 대학자, <왕인 박사 유적지>나 이화여대 도예과와 함께 하는 <구림 문화회관>의 도예전시실에 들리면, 이곳 구림 땅에서 우러나는 고아한 유림 문화의 품격과 깊은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고적한 마을이기도 합니다.
도갑사 입구의 주차장이나 언덕바지에 있는 월출 산장의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절집의 입장료는 명색 월출산 국립공원 지역이어서 일인당 2500원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자주 이곳을 들르는 인근 사람들은 절문 앞에 바짝 서있는 매표소를 거치지 않고, 갓길로 빠져서 우묵한 숲속의 빈터에 차를 세우고 철조망을 넘어서 잠입하기도 합니다. 책 도둑이나 꽃 도둑을 용서하는 마음이 통한다면 아마도 절을 찾고 기원하는 마음도 용납될 수 있지 않나 하며 장난 삼아 그리 하는 것이겠지요.
도갑사는 영암군 군서면, 월출산의 가지인 도갑산 품에 신라 말엽 導詵國師가 창건하고 이 후 훼손된 것을 조선 중기에 守眉大師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 유서깊은 절입니다. 국보 50호로 지정된 도갑사 해탈문은 주심포집과 다포집 양식을 혼합한 것으로 산문 건축의 희귀한 자료로 보존된 것이라는데, 도리어 이 산문에 오르는 돌계단의 난간들이 마치 양의 머리나 구름의 회오리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곡선의 조각으로 눈길을 끌며 아름답습니다. 해탈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몇 년 전 발굴해 둔 주춧돌로 남은 절터 자리들이 스산함을 주는데, 그래도 그 규모가 엄청 컸던 것을 알게 합니다. 또한 굵은 느티나무 아래 놓여 지금은 수조로나 쓰이는 길이 5m도 넘는 石製구유가 눈길을 끕니다.
좌측으로 범종각과 기이하게 자라서 折枝된 나무들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 국사전의 쇠락한 모습과 팔각석의 등대석조, 삼층석탑과 오층석탑의 풍화된 모습을 통해 세월의 길이와 풍상의 깊이를 처연히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숲으로 들어서면 새로 축조하여 너무 생뚱스런 하얀 화강암의 沈華橋와 보물 89호인 석조여래좌상의 유치하고 치졸한 솜씨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도 3x2.2m인 하나의 화강암 돌에 나룻배 모양의 光背와 불상을 함께 조각한 것은 고려시대의 것으로는 드문 솜씨로 남아있는 자료가 된다합니다. 계곡이 시작되는 등산로 초입에 선 지방문화재 38호인 도선수미비는 제법 큰 규모의 거북 등위에 장중한 비석과 비문으로 잘 보존되어 쇠락한 절의 품위를 다소나마 지키고있습니다.
절을 안고 있는 도갑산은 월출산의 서쪽 발단에 해당하는 375m의 높이로 천왕봉까지 오르는 길목도 되며 또한 마왕재 억새 밭까지는 단 거리 등산 코스로도 적당한 곳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세밑이면 이곳 월출 산장에 숙박하여 첫날 새해를 맞으려는 등산객들로 붐볐는데, 요즘은 길이 좋아져 부근의 집에서 일찍 나서는 이들도 충분히 해돋이를 본다 합니다. 작년의 신정 초하루에는 눈이 제법 쌓여있어서 작은애와 함께 뒤로 쳐졌던 나는 억새밭을 0.8km남긴 급 비탈길인 홍계골 근처에서 길을 잃어 포기하고 내려온 전적이 있는지라 올해는 다부진 마음으로 등산화 갖추어 신고 부산히 걸었습니다.
두어 달 전에도 잘 오른 마왕재에서 10분쯤 쉬면서 작은 회초리 같은 억새들... 멀리 산 뒤로 겹치는 또 산의 병풍같은 모습과 청보라빛 음영에 감탄하고, 낚시 다니던 월남 저수지의 녹색 물빛에 놀라고, 월출의 산 갈피 갈피마다 숨은 추색의 담담함에 숨죽이다... 일몰의 해 그림자가 멀리 해남 앞 바다에 신기루처럼 뜰 때까지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하산 길은 순식간에 어두워져서 때아닌 소경처럼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내려 왔었답니다. 실인즉 오를 때 도수 있는 선그라스를 썼었는데 그만 맑은 안경을 차에 두고 가는 바람에, 벗을 수도 없고... 밤길을 선그라스 끼고 오직 검은 달빛에 의지해서 더듬거리며 힘들게 내려온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런데 그 날 참 오랜만에 등불 하나 없이 달빛만이 비취는 길을 걷는 맛은 잃었던 고향 길 같았다고나 할까요? 아버지 등에 높이 업혀서 걷던 외갓집 동네 어귀 같은... 깨끗한 절 마당에 푸르게 쏟아지는 보름달빛과 성큼성큼 따라오는 절집의 하얀 개와 바람에 쓸리는 댓잎 소리가 그렇게 쌉쌀한 느낌이었지요. 그래서 멀리 가장 가난하고 초라한 시절에 즐기던 미각과 놀이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우리를 아쉬운 추억에 빠지게 하나 봅니다. 그러기에 아직 추억이 뭔지도 모르던 청춘에 읽고 세월의 축적을 몹시 부러워했었던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단편 <삼십 세>를 펼치면, 이제는 도리어 풋풋한 시간의 향내가 맡겨집니다.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로 환원해버린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불가사의한 새로운 능력으로, 지나간 모든 세월을, 경솔하고 심각했던 시절을, 그 동안 지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그는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 씌워 자신을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올 초하루는 시먹은 애들은 빠져나가고 달랑 둘이서 점심 후에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막 또 한 살을 먹어버린 나를 놀리느라 '몇 시간 전과 전혀 다르게 쉬어버렸다'고 약올리지만, 그의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내 마음에 서리처럼 내리며 반격을 멈추게 합니다. 세월이 그렇게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게 산을 높이 오를수록 잘 보이는 것 아닐까요. 햇살은 따스하지만 쌀쌀한 산정의 바람을 맞받으며 먼 산과 산의 원근의 어울림이나 병풍처럼 둘러친 장엄한 골산의 스카이라인을 두리번거리는데, 그는 큰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뜨겁고 간절한 기도가 닿을 듯 가까운 하늘, 투명한 대기 속으로 아쉽게 흩어질 때, 나는 발아래 부드러운 흙을 나뭇가지로 해적이며 21세기의 첫 기도를 아무도 모르게 고이 묻어두었습니다.
'01.01.13 수십 개의 새해를 기억하며 푸른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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