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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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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샘

푸른샘74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빈센트 반 고흐

SHADHA 2004. 2. 12. 20:50


푸른샘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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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빈센트 반 고흐


마음이 몹시 허전할 때면 책보다 좋은 친구는 없습니다. 폭설로 나다니기가 어려워진 이즈음 모든 약속은 취소해버리고, 눈밭에 반사되어 햇살이 더욱 밝은 창가에서 오랫동안 맘에 둔 책들을 읽습니다. 올 겨울 들어 이상한 버릇은 비슷한 류의 책들을 한꺼번에 펼쳐두고 두어 권을 누비며 동시에 읽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좀더 신뢰가 가고 맘에 드는 쪽이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보완되거나 확인되는 사실이 있어 깊숙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건 어쩌면 두 장의 헝겊을 잇대어 바느질하는 요즘 나의 취미에 근원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 새하얀 눈조차도 퀼트의 속을 채우던 뽀송한 솜 같아서 포근하고 따스하게 느껴지고, 며칠 전 눈이 안 오는 부산에 눈 대신 보내려고 사온 하얀 설탕의 입자들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도 느껴지는군요.


어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대목부터 고흐의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대 없이는 못살아'가 아니라, 자기사랑에 대한 필요성을 외친 그가 참 진솔해 보였습니다. 그는 이미 연상의 사촌누이, 아이가 딸린 이혼녀를 사랑하였다가 온 집안의 웃음거리가 되어본 이후였습니다. 이번에 선택한 여인은 임신한 매춘녀로 버림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를 이해하게 하는 다른 책을 보니, 그는 일찍이 책과 그림 그리고 신학을 통해서 정신을 고양하고 탐구하는데 열정을 가진 건실한 청년이었습니다. 한 때는 목사가 되어 아버지의 기대에 맞추려고 애쓴 장남이었으며 탄광촌에서 가진 것을 다 던져 사랑을 몸소 실천한 양심적인 전도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엔을 사랑하게 되자 목사인 아버지의 눈에는 방탕아에 불과했겠지요.


그가 1879년 여름, 그림에 몰두하기로 작정한 때부터 1890년 여름까지 화가로서 활동한 십여 년의 시간동안 여인의 누드나 여자를 그린 시절은 아주 짧았습니다. 시엔과 함께 지내는 동안 순종적인 그녀를 모델로 연필 스켓치한 <슬픔>을 통해, 살아있는 한 결코 우리를 떠날 수 없는 숙명적인 슬픔의 숨결을 보여주었고 <위대한 여자>를 그려서 자기를 희생해가며 새로운 생명을 지키는 여인 반나의 모습을 그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쏟아지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과 가족의 몰이해, 그리고 유일한 후원자인 동생 테오로부터의 경제적 지원도 끊어지게 되는 수모와 비극을 당하게 됩니다. 갈곳 없는 그의 현실에 실망한 시엔마져도 모든 믿음과 사랑을 던져버립니다. 과연 육체나 신분의 더러움은 무엇이기에 한 인간의 가슴에 핀 단 한번의 사랑을 무참히 쓸어 내버려야 할까요. 그 후로도 그는 이루어질 수 없도록 운명 지워진 고통스런 사랑밖에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사랑이 떠난 후의 고독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쉬며 기도를 통해서 서서히 회복해갑니다. 그의 강한 믿음은 편견과 아집으로 뭉쳐진 위선적인 사람이 믿는 방식과 달랐으며, 그의 사랑은 시엔같은 고통받는 여인까지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참으로 고귀하고 강인한 영혼의 사랑이었습니다. 그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순간 외에 쓴 편지를 보면 숭고한 신앙심에서 우러난 인간에 대한 깊은 배려가 아주 논리적이며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감정의 폭을 느끼게 하기에 도리어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빛과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30년이나 이 땅 위를 걸어오지 않았나!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싶다.>


그는 테오에게 보내는 글 속에 자신의 일을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 붓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와 숲 사이에 서있는 인생의 모습을 진지하고 평화롭게 그렸습니다. 그는 친구인 라파르나 베르나르에게 쓴 글에서 예술이란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솟아나는 것,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감정에 따라서 그려진 것, 타오르는 불과 영혼으로 그려내는 것이라 말하고 또 실천하였습니다.  


비어있는 캔버스를 응시하며 두려움의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그는 진정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순박한 농부가 씨뿌리고 수확하는 밀밭 위로 빛나는 강렬한 태양과 불타듯 뜨거운 해바라기들, 그리고 저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처럼 그의 그림에 빛나는 별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야심과 희망의 불이 타고있다는 증거였겠지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땐 묻곤 한다.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듯이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수도 없듯,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화상을 하고있는 동생조차도 한 점도 팔지 못하는 그림, 그 불확실한 작업을 위해 계속 물감 살 돈을 요구하는 그가 차라리 뻔뻔스러웠다면 좋았을 것을... <내 그림의 매매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저 한번이라도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싶다. 어떻든 상관없이 나는 반드시 그림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동생아, 우리 두 사람은 현실 속에 살고 있다.>  1889년 1월 그는 테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가난과 고독과 질병으로 깊은 고통 속에 살 수 밖에 없던 그가 드디어 견딜 수 없는 현실의 족쇄를 스스로 풀어버리기까지 짧고도 굵게 산 그의 생애는 오직 그림만이 전부였습니다.


고갱과의 애증이 남긴, 정신 병원에서의 고독과 그림에 대한 광기 섞인 몰입으로 뭉쳐진 그의 모습은 그가 숱하게 그린 자화상에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유배된 자의 초상이요, 평생을 고독과 싸운 이의 초상이며, 예술로밖에는 말하지 않았던 자의 초상입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격렬한 감정을 표현할 대상으로 자기 자신밖에는 없었음을 확인하였나 봅니다. <고흐는 평생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왔다. 이런 자화상을 그린 사람이 또 있었을까? 아니 그보다도 이런 자화상에 걸맞은 자아가 또 있었던가?> 라고 한 평론가는 자문하였습니다.


그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단어, 그가 영원한 동반자 테오에게 주겠다던 靈魂은 무엇인가요? <육체를 떠나서도 존재하며, 인간 활동력으로 생각되는 정신적 실체>라고 사전에 쓰여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이미 그가 남긴 그림 속에 용해되어 스며들어버리고 빈 허물같은 영혼의 집만이 테오에게 상속되었다는 말일까요. 형이 죽은지 6개월 후 두 사람 몫의 영혼을 가진 테오도 33살의 나이에 허물어지듯 그의 곁으로 가버렸습니다.


           '01.01.15
            영혼의 가장 겉껍질을 살피며 푸른샘 씀


읽은 책은 신성림 옮김, <반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출판사
        민길호 지음,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학고재

고흐의 그림 싸이트는 하얀새님이 추천하신
암스텔담 반고흐 국립 미술관이 가장 잘 정리되어있고 풍성합니다
http://www.vangoghmuseum.nl